경향신문 역사시리즈/100년을 엿보다

(35) 이발소

손동우 기자 sdw@kyunghyang.com


교과서나 대본소 만화 외에는 별다른 읽을거리 하나 없던 1960~70년대 보통 아이들이 ‘폭넓은 인문교양’을 접할 수 있는 장소는 엉뚱하게도 이발소였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상고머리’ ‘빡빡머리’ ‘니부가리’ 등 갖가지 형태의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깎으면서 극히 초보적인 형태나마 회화, 문학, 동양학 등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이발소의 인문학 교재는 이른바 ‘이발소 그림’이라고 불리운 모사복제화였다.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 줍는 사람들’은 어느 이발소에 가더라도 거의 예외없이 걸려 있었다. 우리 농촌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림 속의 풍경을 보면서 이발소 손님들은 자연스레 서양 회화에 접근할 수 있었다.
러시아 시인 알렉산데르 푸슈킨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도 바로 이발소였다. 물레방아 돌아가는 그림의 한편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고, 그것은 감수성 예민한 아이들의 뇌리 속에 고스란히 각인됐다.

어미 돼지가 새끼 돼지에게 젖을 물리는 그림에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한자가 적혀 있어 한자공부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또 어부가 낚시하는 그림에는 ‘득어망전(得魚忘筌)’의 사자성어가 그림 윗편에 새겨져 있었다.
‘득어망전’의 출전은 <장자>로서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 즉 목적을 이루면 그 수단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일차원적 의미를 뛰어넘어 ‘진리를 깨달아 말이나 설명이 필요없는 경지’라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기도 했다. 가히 ‘이발소 수훈(垂訓)’이었다.



1970년대 밀레의 ‘만종’이나 푸슈킨의 격언이 내걸렸던 이발소는 ‘폭넓은 교양’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풍경이 되어버린 전남 장흥의 한 이발소에서 마을 주민이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이발소 그림의 대종은 한국전쟁 직후 서울 용산 삼각지 부근에 자리잡은 화랑들이 제작한 상화(商畵)였다.

삼각지 화랑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주한 미군에게 파는 한편으로 전국의 이발소에 보급했으며, 미국과 일본에 수출을 하기도 했다. 이 그림의 가치에 대해 저급한 미술을 뜻하는 ‘키치’라고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민중의 구체적인 삶과 함께 호흡한 대중생활미술이라고 치켜세우는 평자들도 없지 않다.
서구의 신식 문화와 함께 들어온 이발소는 짧은 시간 동안에 동네 남자들의 사교장으로 자리잡았다. 이발소 그림이 폭발적인 수요를 낳은 것도 바로 이 같은 배경에 기인한 바 컸다.

일반인의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내린 이발소는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발소를 가장 즐겨 다룬 작가는 구보 박태원(1909~1986)이었다. 구보의 대표작인 <천변풍경>에는 청계천 근처의 한약국, 여관, 당구장, 술집 등에서 일하는 70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인 재봉이는 이발소 사환으로서 자신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소상하게 진술한다.
구보는 이발소만을 소재로 한 <이발소>라는 단편도 썼다. 소설 속의 화자는 동소문 밖 이발소에 자주 간다. 그런데 이 이발소는 시설이 빈약하고, 세수비누 대신 빨래비누를 사용하며, 드라이어는 늘 고장이 나 있는 등 전형적인 동네 이발소로 묘사돼 있다.

전통적인 이발소가 1980년을 전후해 쇠락하게 된 까닭은 우선 고객들, 특히 젊은 남성들이 미용실로 발걸음을 옮겼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낡아빠진 의자, 벅벅 소리를 내며 혁대에다 갈아대는 면도칼 등 ‘촌스러운 모습’들을 더이상 친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보다 세련된 헤어스타일’을 모토로 내건 미용실이 이들을 대거 흡수한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발소가 퇴폐업소로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 면도사를 고용해 면도와 안마 등 ‘약간의 서비스’를 실시하던 이발소들은 눈앞의 이익에 점차 본격적인 성매매업소로 전환했고, ‘순수 이발소’들은 설 땅을 잃었다.

‘퇴폐’에 밀린 ‘모범’은 이제 도시의 변두리에서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눈에 띌 뿐이다. 대개는 60대 이상의 늙은 이발사들이 혼자서 가위질을 하고 있으며, 이발소 그림도 걸려 있지 않다. 인걸은 의구한데 그림은 간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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