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100년을 엿보다

(38) 여름방학숙제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작심삼일의 법칙은 여름방학에도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이번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3일 만에 후딱 숙제를 끝내고 실컷 놀아야지!”

해마다 반복되는 개학 하루 전날의 극심한 불안감과 몰아치기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심이다. 그러나 40여일 후에나 제출할 숙제를 미리미리 해두는 새 나라의 어린이는 많지 않았으리라.
탐구생활 몇 쪽까지, 매일 일기쓰기, 공작만들기 계획은 3일을 못갔다. 아침 7시 기상, 오전 9시부터 숙제와 공부…. 색색으로 예쁘게 꾸민 여름방학 계획표는 제쳐두고 일단은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여름방학이면 ‘곤충채집 숙제’를 핑계로
아침부터 날 저물 때까지 쏘다니며 놀았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러나 아이들은 여름방학의 대표적인 숙제 곤충채집만은 열심이었다.
국민(지금의 초등)학생이 있는 집에는 도시나 시골을 가리지 않고 파란색 그물망의 곤충채가 걸려 있었다. 그나마 마땅하지 않으면 양파망과 긴 나뭇가지를 이용해 엉성한 잠자리채를 만들어썼다.
아이들은 장마가 지나고 매미의 첫 울음소리가 터져나오면 본격적인 곤충채집에 나섰다. 아이들은 떼를 지어다녔다. 도시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도심 재개발로 인한 공해와 환경파괴가 아이들의 방학숙제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아이들은 동네 뒷산이나 가까운 개울가를 찾아 곤충잡이 경쟁을 벌였다. 몇몇 악동들은 잠자리와 매미의 날개를 떼어내고 갖가지 실험에 나섰다.
어느 아이들은 애잔한 기타연주곡 ‘로망스’가 인상적인 영화 <금지된 장난>의 주인공처럼 숨진 곤충들을 땅에 묻어주며 UN성냥의 성냥개비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개학날이 다가오면 문방구에는 미처 숙제를 못한 아이들을 위한 곤충채집본이 등장했다. 그러나 문방구에서 사온 것은 단박에 표시가 났다. 보랏빛 주단결의 화려한 나비와, 날개가 선명한 잠자리, 연둣빛 사마귀 등은 채집상태가 좋은 제품이었다.
샘이 난 아이들은 선생님도 뻔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꼭 일러받쳐야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80년대 접어들면서 더 이상 곤충채집은 아이들의 숙제가 되지 못했다. 개발로 인한 환경공해가 심각해지고 아파트 건설로 도심의 야산이나 작은 개울이 없어지면서 숙제로 잡을 만한 곤충 역시 사라졌기 때문이다.
농촌도 사정은 비슷했다. 생산 제일주의로 과대한 농약을 살포하면서 곤충이 흔하지 않게 됐다. 당시 신문에서는 이를 안타까워하는 기사들이 등장한다. 요즘은 애완용으로 파는 사슴벌레, 달팽이 등을 집에서 기르며 관찰일기를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방학숙제의 최대 골칫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밀린 일기다. 40여일치의 일기를 개학 하루 이틀 전 다 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던 시절 아이들은, 요즘과 달리 고민이 더욱 컸다. 바로 일기의 날씨 때문이다. 일기내용이야 그럭저럭 지난 일들을 회상하고 덧붙여 지어썼지만 ‘맑음, 흐림, 비, 바람, 비오다 갬’ 등 날씨가 문제였다. 한 반 60명 아이들의 날씨가 서로 달랐던 것도 이런 속사정에서다.

생활수준이 나아지고 사회가 변화하면서 숙제도 달라졌다. 비만 아동이 증가하면서 줄넘기 등 하루 일정량의 운동체크리스트가 생겨났고, 자기주도학습에 부합한 과제물과 학교가 아닌 학원 숙제로 몸살을 앓게 된 것이다.
농촌 공동화현상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외치며 달려갈 시골집이 사라진 아이들은 대신 오전부터 학원차를 타고 촘촘히 짜인 학원순례를 시작하기도 한다. 빈익빈 부익부로 상처받는 숙제들도 있다.

방학이 되면 손쉽게 해외연수나 여행을 다녀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가족여행사진’ ‘박물관, 공연티켓’ 붙이기 등에 난감해하는 동심도 있다.
 배움에 목말랐던 지금의 60~70대 어른들에게는 그나마 방학숙제가 사치였다. 도시 아이든, 농촌 아이든 방학이면 특히 부모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예외없이 논일, 밭일을 도왔기 때문이다.

시대변화로 방학숙제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숙제가 없어 마냥 편해보이는 어른들이 부럽고 원망스럽기까지 한 어린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러나 그땐 왜 몰랐을까. 어른들에게는 하루하루를 사는 게 큰 숙제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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