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100년을 엿보다

(7) 연애편지

유인경 선임기자


책장을 정리하다 낡은 책에서 발견한 편지 한 장.

“왜 내 사랑이 네게 짐이 되는지 모르겠다. 너의 냉정함에 난 수취인 거부의 남루한 소포 꾸러미로 전락했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난 너의 의미가 되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는데….”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대학 선배가 보낸 연애편지다. 당시엔 시큰둥해서 무심코 읽던 책에 꽂아두었나 보다. 하지만 연애편지는커녕 손으로 직접 쓴 연하장 하나 못 받는 지금, 그 고색창연함조차 애틋하다.

누구나 한 번쯤 연애편지를 쓰고 받았다. 휴대전화도, e메일도, 메신저도 없던 시절엔 편지가 사랑의 전달수단이었다.
유치환의 ‘행복’과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등 유명한 연애시를 인용하고, 편지지만 수십 장씩 버린 뒤 새벽녘에야 겨우 완성시키지만 아침에 읽어보면 낯 뜨거워 찢어버리곤 했다.
e메일과 문자메시지는 내 사랑을 광속도로 상대에게 전달하지만 연애편지는 우체통과 집배원의 손길을 통해 하염없이 느리게 전해진다. 그런 느림과 기다림 덕분에 연애편지는 사랑을 더 숙성시키고 상상 속에서 더 긴 여운을 남긴다.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해 그토록 혼신을 다해 쓴 글이 있을까.


한 젊은 여성이 정성스레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연령 제한도, 직업 구분도 없는 게 연애편지였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린다 김 사건’ 때 “보고 싶은 심정 이상으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드오” “언젠가 너의 붉은색이 감도는 눈망울과 그 가장자리를 적셔내리는 눈물을 보고 너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다. (중략) 샌타바버라 바닷가에서 아침을 함께한 그 추억을 음미하며…”라는 뜨거운 연서를 쓴 이들은 열혈청년이 아니라 백발이 성성한 장관이나 국회의원이었다.

연애편지에 무슨 문장력과 메타포가 필요할까. 불문학자 김화영이 들려주는 연애편지 사연은 진실의 힘을 증명한다.

1960년대, 군대에서 문맹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김화영에게 한 피교육자가 편지를 읽어달라며 꺼냈다. 그의 아내가 백지 위에 손바닥을 댄 채 손가락의 윤곽을 따라 연필로 서툴게 줄을 그은 그림, 그 아래에 서툰 글씨로 딱 한 줄의 글이 쓰인 편지였다.

“저의 손이어요. 만져 주어요.”

아무리 현란한 미사여구와 고상한 철학으로 포장해도 연애편지는 X레이 사진처럼 우리의 본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장 폴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시몬 보봐르가 미국작가 넬슨 앨그린에게 보낸 편지.

“오세요 내 사랑, 와서 저를 당신의 힘세고 부드러우며 탐욕스러운 두 손으로 안아줘요.”

진심을 담은 글 모두는 연애편지가 아닐까. 자크 데리다는 <글쓰기와 차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모든 언어는 당신이란 절대적 타자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다. 내 언어는 타자성을 긍정하는 언어, 타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마치 연애편지를 쓰듯 섬세하고 부드럽게 다가가면서도 어떤 알 수 없는 수줍음으로 인해 다시 몸을 돌리고마는 그런 언어다.”

114에 문의전화만 걸어도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란 말을 들을 만큼 곳곳에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에 왜 우리 가슴은 더 삭막한가. 일상의 안락과 출세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면서 우리는 연애편지 쓰기를 잊어버렸다.

다시 색깔 고운 종이를 꺼내 연애편지를 쓰면 두꺼워진 피부 속의 수줍고 순수한 속살이 드러날까. “사랑한다고 한 줄 쓰고 나니 아무 말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라는 다자이 오사무 풍의 연애편지를 받는 게 로또 당첨보다 더 어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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