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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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4월29일 ‘보호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이집’ 인천 송도에 있는 어린이집의 보육교사가 네 살짜리 여자아이를 폭행하는 동영상이 공개된 데 이어 추가 범행이 드러나면서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학부모들이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대신 돌보미를 고용해 집에서 돌보는 ‘홈케어’로 전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린 탓이다. 어린이집은 1970년 2월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초창기에는 탁아소(託兒所)로 불렸으나 1968년 정부 방침에 따라 어린이집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82년부터 한동안 새마을유아원으로 지칭되기도 했지만 1991년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되면서 어린이집으로 명칭이 통일됐다. 경향신문은 1974년 4월29일자 5면에 ‘보호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이집’이란 제목의 기획기사를 실었다. 어린이집이..
1976년 1월15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그날의 연두기자회견은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이었다. 39년 전인 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이다. 흥행몰이 중인 영화 의 국기하강식 장면이 나오던 시기쯤으로 짐작된다. 박 전 대통령은 “작년 12월초 영일만 부근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되었다. 구체적인 매장량은 몇 달 뒤에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1976년 1월15일자) 당시는 오일쇼크로 인해 경제가 어려웠고 월남패망으로 인해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나온다니…. 석유가 발견된 사실을 확인한 박 전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이 보는 앞에서 ‘국산석유에 직접 성냥불을 댕겨보았다’라든가, ‘감격해 석유를 마셨다’라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연두기자회견 뒤 언론에서는 석유 채굴과 관련..
1965년 1월1·4일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문장과 극한적인 긴장감은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의 영관을 획득하기에 족하다고 보겠다.” 경향신문 1965년 1월1·4일자는 신춘문예 당선작과 심사평 및 당선자 소감을 싣고 있다. 앞의 심사평은 그해 소설 부문 당선작인 조세희의 ‘돛대 없는 장선(葬船)’(상금 2만원) 심사평이다. 경희대 재학 중 당선한 조세희 작가의 당선소감도 흥미롭다. 앳된 모습의 사진이 게재된 작가의 소감을 한번 읽어보라. “나는 이따금 어떤 의문을 갖게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들 안의 것을 어떻게 밖으로 내놓는 데 성공했을까 하는 점이다. … 늦가을의 풍경 앞에서 영성의 고갈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들 안에 깊은 세계를 지니고 있을 것이 아닌가. … 그러나 나는 아직 그 세계로 가는 통로를 알..
1987년 8월21일 여야, 헌법재판소 설치 합의 헌법재판소는 입법·행정·사법 등 3권으로부터 독립해 중립 권력을 행사하는 ‘헌법 수호자’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헌법재판소에서 결정한 사항에 대해 제약 또는 변경을 가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특정 사안에 대한 최종적인 ‘국가 의사(意思)’인 셈이다. 헌법에 헌법재판소 설치가 처음 규정된 것은 제2공화국 때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뤄진 3차 헌법 개정에 따라 헌법재판소 제도가 도입됐고, 이듬해 헌법재판소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헌법재판소법을 폐지하고, 위헌법률심판을 대법원에 맡겼다. 1972년 제정된 유신헌법에는 대법원에 헌법위원회를 둔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하지만 당시 대법원은 단 한 건도 위헌심판을 제기하지 않아 헌법위원회는 유..
1985년 11월7일자 조중건 대한항공 사장의 기내 서비스 아무리 즐거운 여행이지만 비행기 안에 장시간 갇혀 이동하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항공사들은 기술이 진보하고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생존을 위해 고객 서비스 개선에 노력해 왔다. 경향신문 1985년 11월7일자(사진)에는 조중건 당시 대한항공 사장이 직접 승객을 상대로 기내 서비스를 하는 모습이 실렸다. 조 전 사장은 이를 계기로 매월 1회 기내 서비스를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객 서비스 차별화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항공사들은 고객들을 가족처럼, 친구처럼, 때로는 제왕처럼 모시기 위해 경주했다. 버진애틀랜틱이라는 항공사는 1등석 손님에게 어깨 마사지 서비스와 손톱 매니큐어 서비스를 할 정도였다(1991년 12월26일자). 기술 진보는 기내 서비스의 질을 높였다. 대한항공은 장..
1947년 11~12월 ‘어떻게 살아갈까’ 시리즈 “글쎄요, 어떻게 살면 좋겠습니까.”(노점상인 이명숙씨) “못살겠다 하면서도 죽지 못해…. 내일 일이 어찌 될지 모르면서 살아가지요.”(차부 길삼룡씨) 경향신문은 1947년 11월27일자부터 ‘어떻게 살아갈까?’를 주제로 시리즈를 시작했다(사진). ‘차부(구루마꾼)’ ‘노점상인’ ‘고학생’ ‘회사원’ ‘예술가’ ‘관리(官吏)’ ‘전재민(戰災民)’ 등 날마다 한 사람씩 등장시키고 있다. 그들의 입에서 해방은 됐지만 아직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미군정 시절의 암울한 분위기가 절절이 묻어나온다. ‘관리편’(12월4일자)의 어느 하급 공무원은 “하루하루 외나무 다리로 절벽을 건넌 것처럼 아슬아슬하다”고 토로했다. 그럴 만도 했다. 1937년의 도매물가지수를 100으로 할 때 1947년의 ‘남조선’ 물가지수는 6만..
1964년 12월7일 서울시 중학교 입시문제 출제오류 1960년대에는 대학입시만큼이나 중·고교 입시도 치열했다. 당시 학생들은 명문 중·고교 입학을 위해 재수도 불사했다. 일부 학부모들의 교육열도 지금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중·고교 입시 문제 하나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쳤던 시기여서 교육당국의 ‘출제오류’는 큰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경향신문 1964년 12월8일자 3면에는 ‘출제시비, 애매한 것 여러개나’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해 12월7일 치러진 서울시내 중학교 전기 입시문제에 정답이 여러개인 출제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중학교 전기 입시출제 중 애매한 것이 여러개나 튀어나와 학부형들과 국민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입시문제 중 이른바 ‘무즙 파동’이란 신..
1988년 12월15일 입시한파 기습 시험 치르는 날은 항상 추운 것일까. 경향신문 1988년 12월15일자에는 ‘입시한파 기습… 내일 영하 9도’(사진)라는 내용의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시험의 중압감에 눌린 수험생에게 기습한파는 설상가상의 불청객이다. 시험 관리를 담당한 부서는 다년간의 기상자료를 토대로 길일을 택하지만 속수무책이다. 그동안 대학입시와 관련한 명칭이 예비고사, 학력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 등으로 바뀌면서 입시한파라는 말도 수능한파로 바뀌었다. 기사는 수험생들이 온몸을 방한모, 머플러, 장갑으로 무장하고 눈만 빼꼼히 내놓은 채 고사장으로 향하는 모습과 이날 서울 기온이 영하 10.1도로 연중 최저라는 내용을 담았다. 1990년대 중반 이전의 입시한파는 지금보다 모질었다. 그래서 선물로 시험을 잘 치르기를 기원하는 부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