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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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18일 여름 휴가철… 공단마다 인력난 ‘구인난’이 신문 1면 머리기사가 된 적이 있다. 24년 전인 1991년 경향신문 8월18일자 1면에는 ‘인력비상…공단마다 휴가미귀 급증’ 기사가 실렸다. “전국 공업단지의 제조업체들이 여름휴가를 보낸 후 복귀하지 않는 근로자들이 많아 심한 인력난으로 조업을 단축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업체는 일손을 구하지 못해 도산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조업을 단축하는 업체들도 속출하고 있다. 여름휴가 후 귀사하지 않는 근로자가 최고 20%에 달한다. 이들은 휴가기간에 자리를 옮기거나 2~3개월 동안 집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저임금에 살인적인 노동시간 탓이다. 이날 경향신문 13면에는 각 업체가 관리직원들을 동원해 ‘돌아오지 않는 직원 찾기’에 나서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섬유기술진..
1999년 1월1일 유로화 공식 출범 새 밀레니엄 개막을 1년 앞둔 1999년 유럽은 한껏 들떠 있었다. 그해 1월1일부터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11개국의 단일통화 ‘유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유로의 도입은 11개국이 같은 화폐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미국에 맞서는 거대 경제블록의 탄생을 의미했다. 경향신문은 1999년 1월1일자 1면에 ‘유로화 오늘 공식 출범’ 기사를 실었다.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EU는 브뤼셀에서 재무장관 회의를 열어 11개국 통화의 유로화 교환비율을 확정, 발표했다”고 전했다. 11개국 통화의 유로화 교환비율은 실물경제 상황과 재정적자, 인플레이션 등을 반영해 결정됐다. 독일 마르크화는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1.96마르크를 내고 1유로를 받았다. 네덜란드는 2.2길드, 프랑스는 6.56프랑, ..
1964년 2월17일 ‘사형수 5000번의 인간개조’ 그는 27세 육군 상병이었다. 부대장 박모 중령 관사 사역이 그의 주 임무였다. 어느 날 “명태 몇 마리와 구두 두 켤레”(박 중령 진술)를 훔친 혐의로 6개월간 혹독한 영창살이를 했다. 복수의 칼을 간 그는 출소하자마자 박 중령의 집을 찾아갔다. 손엔 도끼가 들려 있었다. 새벽 1시를 조금 넘은 시간, 어둠 속에서 닥치는 대로 휘두른 흉기에 일가족 여섯명이 스러졌다. 어처구니없게도 희생자들은 박 중령 가족이 아니라 후임 부대장 가족이었다. 그는 범행 25일 만에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다. 1963년 가을의 일이다. 1964년 2월17일자 경향신문에 큼지막한 사진 한 장이 실렸다. 성경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형수 5000번’ 고재봉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살인귀(殺人鬼)’라 불렀다. 경향신문은 그가 ..
1978년 8월31일 시내버스 계수기 다시 등장 며칠 전 성인 버스요금이 1250원으로 인상됐다. 40년 전인 1975년에 35원이었으니 40배 가까이 올랐다. 버스요금도 많이 올랐지만 그사이 시내버스와 관련된 많은 것들도 잊혀지거나 사라졌다. 버스 회수권, 토큰, 버스요금 삥땅(가로채기), 버스 안내양…. 지금은 거의 볼 수 없거나 쓰이지 않아 화석처럼 되어가는 것들. 지금부터 40여년 전인 1970년대 중반 즈음의 추억거리들이다. 버스 회수권과 토큰은 만원버스에서 잔돈을 거슬러줘야 하는 불편함을 줄이고 삥땅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부분 회수권은 가로 5㎝, 세로 20㎝ 정도의 크기에 10장의 버스표가 인쇄돼 있었고 한 장씩 잘라서 사용했다. 사용자에 따라 ‘중고생’ ‘대학생’ ‘일반’이라는 표기가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학 100원 생’의..
1995년 12월 작가 신경숙 “‘외딴 방’에 들어가 나를 보았다” “신경숙. 창작집 와 장편 을 발표하면서 문학성과 대중적 인기를 한꺼번에 인정받은 90년대의 대표적인 소설가 중의 한사람. 자전적 소설 을 통해 그녀는 ‘63년 정읍 출생,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으로만 되어 있던 자신의 약력에 3년여 동안의 가리봉동 여공 시절이 생략돼 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지난 12월6일 여공 시절 다니던 모교를 찾아갔다. 그녀가 ‘공단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놀랐다. 출판사 편집진도 처음엔 ‘그냥 소설이겠지’라고 생각했을 정도. 서울서 고학하는 오빠들 뒷바라지를 위해 중학교만 마치고 상경. ‘18세 이연미’로 나이와 이름을 속여 동남전기에 입사. 공장에서 쉬는 시간이면 컨베이어 벨트에 공책을 놓고 좋아하는 작품을 통째로 베껴 옮겼다. 그 시절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1980년 11월 송전탑 시비 환경권 첫 인정 1980년 11월15일자 경향신문 7면에 다소 이례적인 기사가 실렸다. ‘인격권 소송 주민이 승리’ ‘새 헌법에 명시된 환경권 인정 첫 사례’라는 표제가 붙었다. 한국전력의 주택가 고압전선 공사에 맞선 주민들이 법정투쟁 끝에 승리했다는 내용이다. 한전은 1979년 9월 낙동강 하구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154㎸ 송전탑 공사를 착공했다. 마을과 680m 떨어진 부산 서구 하단동~당리동 구간이 문제였다. 1500여가구 6000여명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공사 현장에 천막을 치고 매일 10여명씩 밤을 새며 공사를 저지했다. ‘인격권 침해 예방 청구소송’도 냈다. 한전은 주민들의 주장이 워낙 완강하자 법원에 공판 연기를 요청했다. 그리고 애초 노선에서 6㎞ 떨어진 곳에 송전탑을 세우기로 하고 설계를..
1996년 5월21일 세계 전염병 사망 연 1700만명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한국 사회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발생 초기 방역에 실패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닌지 우려가 될 정도다. 전염병은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퇴치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신종 전염병이 출현한다. 경향신문은 1996년 5월21일 전 세계에서 1년에 전염병으로 숨지는 사람이 1700만명에 달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사망자가 많은 주요 전염병은 뎅기열(60만건 발병, 2만4000명 사망), 콜레라(38만4000건 발병, 1만1000명 사망), 디프테리아(10만건 발병, 8000명 사망), 에볼라출혈열(316건 발생, 245명 사망) 등이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한때 창궐했던 콜레라는 자취를 감췄다. 에볼라는 발생 건수는..
1969년 3월22일 삼일고가도로 개통 서울 도심에 고가도로가 선을 보인 것은 1968년 9월이다. 서소문육교~아현동을 잇는 길이 942m의 아현고가가 효시다. 아현고가는 2014년 철거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도심 교통체증 해소에 일익을 했다. 고가도로는 경제성이 큰 장점이다. 기존 도로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얹기 때문에 도로 건설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토지 수용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60년대 이후 서울에 건설된 고가도로만 100여개에 달한다. 고가도로의 난립 이면에는 조국 근대화를 앞세운 군사정권의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1969년 3월22일자 경향신문에는 삼일고가도로(청계고가) 개통 소식이 1면을 장식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와 함께 테이프 커팅을 하는 사진도 나란히 실렸다. 아현고가에 이은 서울의 두번째 고가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