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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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26일자 ‘범인없는 살인-이태원 사건’ 좁은 화장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은 셋. 한 명은 피해자, 나머지 두 명은 친구 사이다. 가능성은 세 가지. 각각이 살인범이거나 이들이 공범일 경우다. 두 명 중 누군가가 죽였다는 것은 100%다. 그런데 아직도 범인을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 1998년 10월26일자 3면에는 ‘범인없는 살인-이태원 사건’ 제하의 특집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사건의 전말’, ‘용의자는 단 2명, 진범은 누구냐?’, 이 사건을 취재한 미군 성조지 기자와의 인터뷰인 ‘노(老)기자 1년6개월 추적’ 등을 다루었다. 사건은 1997년 4월3일 오후 10시쯤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발생했다. 대학 재학생 조중필씨(당시 23세)는 주한미군 군속의 아들 2명과 마주쳤고 흉기에 9군데를 찔려 ..
1976년 5월29일 커피에 담배가루…일명 ‘꽁초커피’ 적발 요즘 커피는 삼시세끼보다 흔한 음료가 됐지만 한창 붐이 일던 1970년대에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경향신문 1976년 5월29일자 7면에는 ‘커피에 담배가루 섞어 팔아’ 기사가 실렸다. “서울지검은 28일 서울시내 일부 다방에서 커피의 양을 늘리고 색깔을 진하게 하기 위해 담배가루를 섞어 팔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수사에 나서 ○○다방 주방장 등 5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다방 주방장 등은 커피 30잔을 내는 한 주전자를 끓일 때 알코피(원두커피)를 정량보다 적게 넣고 그 대신 3분의 1개비 분량의 담배가루를 섞어 색깔을 진하게 하거나 소금과 계란 껍데기를 넣어 커피 맛을 내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회적 충격이 컸던 만큼 경향신문은 “식품 범죄의 극치”라고 비..
1973년 6월23일 국사 교과서 국정으로···검정제 전면 폐지 한국사 교과서를 일제의 식민통치와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정권 교과서’로 만들 작정인가. 청와대와 여권, 교육부가 검인정 체제인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 발행 체제로 바꾸려 하고 있다. 역사학계와 학부모단체는 “역사 교과서를 국정 발행 체제로 전환하려는 것은 국가의 획일적 시각을 강요하는 시대착오적 망상”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발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1895년 근대 교과서가 처음 선보인 이후 교과서 발행은 줄곧 검인정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1974년 국정 발행 체제로 바꿨다. 경향신문은 1973년 6월23일자 7면에 ‘국사 교과서 검정으로…검인정 제도 폐지’ 기사를 실었다. 경향신문은 “문교부는 국사교육을 대폭 ..
1962년 5월10일 남산케이블카 완성 남산케이블카는 국내 최초의 케이블카다. 1962년 5월12일 운행을 시작해 반세기가 넘도록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회현동 승강장에서 남산 중턱까지 605m. 지금까지 1700만 여명의 연인과 친구와 가족이 이 삭도(索道)를 타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추억을 쌓았다. 지방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 중 가장 인기 있는 구경거리이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1962년 5월10일자에 ‘서울에 또 하나의 풍물시(風物詩)…’라는 표제를 달고 남산케이블카의 운행 개시를 알렸다. ‘은하수’와 ‘무지개’ 두 대의 케이블카가 부지런히 산을 오르내렸다. 손님은 한번에 31명이 탈 수 있었는데 안내원 1명이 동승했다. 좌석이 4개뿐이어서 대부분 서서 서울시내 전경과 멀리 굽이쳐 흐르는 한강을 감상했다. 남산케이블카가 설치된 이후 전..
[경향으로 보는 ‘그때’]1999년 10월2일 중 건국 50주년 군사퍼레이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는 프로파간다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안으로는 국민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결속력을 다지는 한편 밖으로는 자국의 국방력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1999년 10월2일자 경향신문(사진)은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정부수립 50주년 기념식을 다뤘다. 행사는 1일 오전 10시 자칭린 베이징시 당서기의 개시선언으로 시작돼 50발의 예포발사, 국기게양, 국가연주, 열병식,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의 연설, 군사퍼레이드 등으로 진행됐다. 이날 기념식에는 장 주석과 주룽지 총리, 후진타오 부주석, 리펑 전국인민대회 상무위원장, 리루이환 정치협상회의 주석 등 중국 지도부 전원이 참석했다. 장 주석은 정장 대신 1949년 마오쩌둥이 정부수립을 선포할 당시 입었던 것과 같은 인민복 ..
1990년 9월25일 ‘롯데월드 변칙허가 특혜 의혹’ 롯데가(家)의 ‘막장 드라마’가 종반부로 치닫고 있다. 형제와 부자간의 막말과 폭로,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가족의 치부까지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형제간의 골육상쟁, 임직원 20만여명의 재계 5위 기업을 개인 소유물로 여기는 총수 일가의 인식, 손가락 하나로 그룹을 좌지우지하는 총괄회장의 독단적 황제경영…. 롯데가의 ‘막장 드라마’는 재벌그룹의 ‘민낯’을 드러내며 지배구조 개편의 당위성을 보여줬다. 순환출자 고리가 416개에 이르고, 80여개 계열사 중 상장사는 8개에 불과한 롯데그룹이 역대 정권의 특혜를 받아 비약적 성장을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경향신문은 1990년 9월25일자 사회면 머리기사로 ‘롯데월드 변칙허가 특혜 의혹’을 단독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롯데월드 부지에 대한 건축허가 당시 서..
1997년 8월2일 박찬호 꿈의 10승 박찬호의 전성기는 고통스럽던 외환위기 때와 겹친다. 대기업들이 속절없이 쓰러지고, 실직자들이 거리를 메우던 시절, 끝이 안 보이는 긴 터널에서 국민들은 아주 잠깐이지만 ‘박찬호 보는 맛’에 살았다. 그는 대학 2학년이던 1994년 빅리그로 직행했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이고 125년 메이저리그 사상 17번째였다. 차별과 편견의 설움 속에 살던 교민들은 “미국 이민 35년사에 가장 큰 경사”라며 감격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그는 단 2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추락했다. 훗날 그는 ‘죽음 같은 외로움’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공주 촌놈’은 절치부심했다. ‘내겐 161㎞의 강속구가 있다’며 스스로를 담금질한 박찬호는 1996년 4월7일 마침내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첫 승을 따냈다. 1997년 박찬..
1992년 3월8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장남 결혼’ 돈과 권력은 비슷한 속성이 있다. 그중 하나가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 형제간에도 마찬가지다. 국내 재벌의 후계 승계는 대부분 권력투쟁 과정을 거쳤으며 이를 통해 재벌이 쪼개지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큰 상처를 남겼다. 지금으로터 23년 전인 1992년 3월7일 잠실롯데월드에서 롯데그룹 장남의 결혼식(경향신문 1992년 3월8일자 13면 보도)이 있었다. 당시 신격호 회장의 나이는 70세였고, 장남 동주씨(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는 38세였다. 남덕우 전 총리가 주례를 맡은 이날 결혼식은 가족행사로 신랑과 신부 측 하객 250명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동주씨의 신부는 미국에서 무역업을 하던 교포의 딸로 동주씨가 미국 내 사업을 하면서 알게 돼 결혼에까지 이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