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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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25일 ‘서갑숙 수기 파문’ 시대는 금서를 만들었다. 금서목록에 올리는 것도, 삭제한 것도 시대요, 세상이다. 1970, 1980년대 세상이 군홧발 아래에 있을 때 권력은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저작물에 ‘불온’이라는 딱지를 붙여 유통을 막았다. 금서는 인화성 강한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과 같은 책들은 ‘의식화를 위한 이념서적’이라는 이유로 압수 대상이 됐다. 억압의 시대가 끝나자 1990년대 권력은 새로운 먹잇감에 ‘외설’ ‘퇴폐’라는 표딱지를 붙였다. 를 쓴 마광수(당시 연세대 교수)와 의 작가인 장정일이 음란문서 제조·반포 혐의로 구속됐다. 정점은 탤런트 서갑숙이 찍었다. 서갑숙은 는 도발적인 제목의 에세이집을 내 외설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경향신문 1999년 10월19일자 23면에는 서갑숙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검찰이..
1981년 11월13일 ‘전 대통령에 전 각료 복무선서’ # 장면 1 : 복무선서 군사정권이 들어선 1981년의 일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13일 남덕우 국무총리 등 각 부처로부터 새 시대의 공무원 복무자세를 다짐하는 5개항의 복무선서를 받았다. 60만 전 공무원으로부터 선서를 받게 된다. 정부는 선서문 2부를 작성한 뒤 1부는 임명권자에게 제출하고 1부는 본인이 소지하도록 했다.” 국가나 국민이 아닌 전두환 개인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던 시절, 경향신문 1981년 11월13일자 1면에 실린 기사이다. # 장면 1-1 : 6월항쟁 “6·10 국민규탄대회에는 전국 18개 도시에서 오후 6시부터 가두시위가 계속됐다. 서울 도심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으며 일부 시민들은 도로변에서 손뼉을 치기도 했다. 또 점심시간에 나온 회사원들은 경찰의 최루탄에 항의해..
’1995년 11월11일 민주노총 공식 출범 한국은 노동조합 하기 어려운 나라인가, 기업 경영 하기 어려운 나라인가. 노조와 기업의 입장은 줄곧 평행선을 그려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업보다 노조가 역대 정권의 탄압을 받고, 불법단체로 낙인찍혀 왔다는 점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만 봐도 노조 결성은 노동자들이 “목을 내놓을(해고당할) 각오로 해야 하는” 일이다. 해방 이후 두 개의 노조가 설립됐다. 좌파계열의 노동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1945년 11월 결성됐고, 우파계열의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이 1946년 3월 출범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눈엣가시’였던 전평은 불법단체로 간주돼 1950년 강제해산됐다. 노동자들의 권익옹호보다는 친정부 활동에 주력하던 대한노총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
1977년 9월15일 대기업들 ‘대졸자 초임 담합’ 4년제 대학졸업자 초임이 일본보다 높던 시절 이야기다. 1977년 9월 중순 삼성물산, 대우실업, 국제상사, 효성물산, 한일합섬, 반도상사, 삼화, 쌍용, 선경, 금호실업, 고려무역 등 국내 대표적인 종합무역상사 대표들이 무역회관에 모였다. 상공부 차관도 배석했다. 이들은 이날 회의에서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을 종합무역상사협의회가 결정한 한도 안에서 지급할 것’을 결정했다. 이른바 ‘임금카르텔’이다.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향신문은 이 사실을 9월15일자에 주요 기사로 다루면서 “그동안 경쟁적으로 임금상승을 주도한 일류 기업들이 종합무역상사를 중심으로 임금상한선제를 결의함으로써 앞으로 임금인상은 이들 기업 이외에도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합상사의 대졸자 초임이 얼..
1999년 7월8일 국보급 미술품 1000여점 위조 단원, 혜원, 겸재 등 조선시대 고서화부터 청전 이상범, 의재 허백련 등 근대화가의 동양화까지 닥치는 대로 위조했다. 적발된 위조품 1000여점을 진품 시가로 환산하면 1000억원대에 이른다.” 경향신문은 1999년 7월8일자 23면에 국보급 포함 1000여점을 위조하고 판매한 일당 15명을 검거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들은 위조한 미술품과 문화재 가운데 50여점을 판매해 21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검찰은 밝혔다. 고미술협회 간부 출신들로 대형 화랑을 경영하고 있는 이들은 100만~200만원을 주고 위조한 작품을 진품이라고 감정한 뒤 전문지식이 부족한 돈 많은 ‘호갱’들에게 수천만원에 팔아넘겼다. 이들은 고미술협회에서 발행한 감정서를 보여주면서 진품으로 믿게 했다. 이 가운데는 TV 프로그램의 감정위..
1946년 10월16일 경향만평 ‘취객이라 욕만 마오’ “만사태평하게 잡바저 잔다고 고연히 남의 사정도 모르고 속단을 내리지 마오. 아! 머리가 아프다. 그 독한 술을. 이달 월급봉투도 빈봉투로 나올 것은 결정적일 것이다. 안해의 ‘운명’과 같은 어둔 얼골이 ‘알콜’에 마비된 몸을 더 한층 괴롭핀다.” 1946년 10월16일자 경향만평에 그림과 함께 실린 ‘취객이라 욕만 마오, 남모르는 사정을 술로’란 제목의 글이다. 경향만평은 해방 직후 정치적 혼란과 대규모 실업 사태 등으로 ‘술 권하는 사회’가 돼 버린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월급쟁이가 머리가 아프도록, 몸이 마비되도록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남모르는 사정’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경향만평에 나오는 취객은 의 작가 현진건이 1921년 발표한 에 나오는 사례와 비슷하다. 새벽 2시, 몸을 가누지..
1961년 12월5일 청계천 복개도로 개통 청계천만큼 수난을 겪은 하천도 드물다. 서울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는 길이 10.84㎞, 유역면적 59.83㎢인 청계천의 본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당시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은 평상시에는 오수(汚水)가 괴어 불결했고, 홍수가 나면 물난리를 일으켰다. 태종은 청계천 치수사업을 벌였고, 영조 때는 20만명을 동원해 바닥을 파내는 준설공사와 함께 유로(流路) 변경작업을 시행해 물의 흐름을 직선화했다. 청계천이 크게 변모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일제는 지명 정리작업을 하면서 ‘개천’이란 명칭을 ‘청계천(淸溪川)’으로 바꾸고, 대대적인 준설공사를 시행했다. 생활하수가 청계천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갔고, 이 과정에서 분뇨와 토사가 쌓여 하천 바닥이 높아졌기 때문..
1996년 3월13일 폭스바겐 ‘딱정벌레’의 귀환 1961년 독일 매체에 별난 광고 하나가 실렸다. “이 차는 앞좌석 사물함 문을 장식한 크롬 도금에 작은 흠집이 나 있어서 교체해야 합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일하는 크루트 크로너 검사원이 발견했습니다.” 과장을 미덕으로 삼던 광고시장의 상식을 깬 폭스바겐 광고였다. 폭스바겐은 이 광고로 ‘믿을 수 있는 자동차’ 이미지를 심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폭스바겐은 독재자 히틀러의 국민차 프로젝트에 의해 1937년 설립되었다. 히틀러의 요구로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가 개발한 차가 ‘딱정벌레’로 유명한 비틀(Beetle)이다. 독일 차의 상징이 된 비틀은 1974년 독일 내 생산을 중단했다가 1990년대 말 새로운 모델로 부활했다. 경향신문은 1996년 3월13일자에서 ‘딱정벌레’의 귀환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