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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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30일 ‘월남 무조건 항복’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이었다. 명분없는 전쟁은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했다.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 ‘월남전’으로도 불린 베트남전쟁. 제국주의에 대항한 ‘베트남의 민족해방 전쟁’이기도 했고, 미국이 ‘반공 십자군 성전’이란 허울 아래 저지른 추악한 전쟁(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올해로 꼭 40년이 됐지만 전쟁의 상흔은 가시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은 1975년 4월30일자 1면에 ‘월남 무조건 항복’ 기사를 실었다.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월남 정부는 30일 상오 10시30분 베트콩 측에 무조건 항복했다. 이로써 30년에 걸친 월남의 유혈사태에 종지부를 찍었다. 두옹 반 민 월남 대통령은 이날 사이공 방송을 통해 전국에 방송된 단 1분간의 짤막한 연설에서 유혈을 방지하기 위해..
1993년 6월 연천 예비군 포병훈련장 사고 익숙하지만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있다. 멀쩡한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180도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흐트러진 복장으로 아무데서나 눕고 틈만 나면 존다. 노상방뇨는 예사고 지나가는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어대기도 한다. 스스로 ‘예비군복 입은 개’라고 자조한다. 오죽하면 ‘군기 든 예비군은 예비군이 아니다’라는 우스개가 있을까. 1년 내내 ‘민간인’으로 살다가 며칠 동안 동원된 예비군들에게 현역의 기강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대부분 엄격한 처벌규정 때문에 훈련소집에 응한다. 예비군훈련장에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종종 경악스러운 대형사고도 친다. 지난 13일 발생한 서울 내곡동 예비군 총기난사 사고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한 예비군의 ‘묻지마 난사’로 애먼 사람들이 죽고..
1995년 2월17일 화제 뿌린 ‘모래시계’ 기억 속으로 “나 떨고 있니?” “아니….” “그게 겁나. 내가 겁낼까봐.” “괜찮아.” 1995년이니까 꼭 20년 전이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의 마지막 장면. 눈이 퀭하게 들어간 사형수 박태수(최민수)는 친구이자 검사인 강우석(박상원)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었다. 날고 기던 조직폭력배이자 살인범인 태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그는 한 올 머리카락보다 쉽게 흔들렸다. 1995년 2월17일자 경향신문은 화제를 뿌리며 종영된 를 다뤘다. 는 광주 민주항쟁, 삼청교육대, 정보기관과 폭력조직의 권력게임 등 금기시됐던 소재를 본격적으로 건드렸다. 참신한 소재와 절제된 언어, 탁월한 영상에 매료된 시청자들은 폭풍의 6주를 보냈다. 송지나 작가의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김종학 PD의 파격적 ..
1982년 5월7일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사건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연일 세간의 화제다.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달 9일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돈을 건넨 정치인 명단을 공개하고 숨진 지 한 달이 지났다.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인사들의 면면을 봐도 근래 보기 드문 ‘정치스캔들’이다. 검찰 수사 칼끝은 2012년 대선자금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을 상대로 한 검찰의 한판승부가 어떻게 결론날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정치스캔들로는 단연 이철희·장영자씨 어음 사기사건이 꼽힌다. 1982년 5월7일자 경향신문 7면에는 ‘미화 80만불 국내외 은닉’이라는 제목 아래 이씨 부부 사건이다. 대검 중수부가 암달러상을 통해 40만달러를 구입해 소지하고 있던 이씨 부부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는 내용이다...
1997년 4월4일 검찰, ‘정태수 리스트’ 수사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4월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검찰이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을 소환해 조사하겠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해 1월 재계 서열 14위이던 한보그룹이 부도를 내고, 5조7000억원에 이르는 부실대출 규모가 드러났다. 건국 이후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으로 기록된 한보 사태의 중심에는 정태수 회장이 있었고, 정·관계와 금융계의 핵심 인사들이 부정과 비리로 얽혀 있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검찰 수사 전까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재계의 마당발’로 불리던 정 회장에겐 그때부터 ‘자물통’ ‘지퍼’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정 회장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금품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일자 여야는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정 회장은 한보사건 국정조사 특위에 참석해 정국을 뒤흔드는..
1963년 10월23일 조포나루터 참사 1963년 10월23일 여주 신륵사 앞 남한강 조포나루터, 찢어진 일기장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내일 소풍을 간다.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신륵사에 가면 참 재미있을 거야. 부처님도 있다고 하는데 무슨 소원을 빌까? 중학교 합격? 그렇지 않으면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엄마에게 무슨 선물을 사다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잠이 안 온다.” 일기장은 안양 흥안국민학교(초등학교)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소녀 것이었다. 소풍 전날의 설렘이 고스란히 담겼다. 흥안국교 5, 6학년은 이날 신륵사로 소풍을 갔다. 귀갓길에 어린이와 교사, 학부형 등 150명이 나룻배를 탔다. 눈앞의 불행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기우뚱, 한 차례 흔들리던 나룻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어린이 38명을 포함해 49명이 익사했다. ‘대참변..
1997년 2월14일 기상천외한 뇌물 전달 수법 이완구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해 비타민 음료 ‘비타500’이 관심을 받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비타500 포장 박스’에 대한 관심이다. 숨진 경남기업 성완종 전 회장 측이 이 총리에게 3000만원의 현찰을 비타500 박스에 넣어서 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실물 박스를 가지고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시연을 하는가 하면 각종 패러디도 양산되고 있다. 실제 시연 결과 5만원권을 넣을 경우 6000만원까지 담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와 제도가 바뀌면서 뇌물을 전달하는 방법과 도구도 달라지고 있다. 뇌물 전달방식을 가장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은 1993년 시행된 금융실명제이다. 실명제에 따라 각종 금융거래는 실명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됐다. 실명제가 도입되기 전 거액의 뇌물을 전달하는 방법은 단순했..
1988년 4월8일 ‘유해식품 최고 사형까지’ 얼마 전 ‘쓰레기 계란’ 파동이 불거져 충격을 줬다. 양계농협의 한 계란 가공공장에서 폐기 처분해야 할 썩은 계란을 제과·제빵업체나 학교에 공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외신에서는 몇 년 전 중국의 ‘가짜 계란’ 사건도 화제가 됐다. 합성소재와 공업용 색소를 넣어 일반 계란과 흡사한 짝퉁 계란을 대량 생산·판매해오다 당국에 적발됐다. 가격도 일반 계란의 반값에 불과했다. ‘짝퉁 천국’ 중국의 실상을 여지없이 보여준 사건이다. 값싼 계란마저 짝퉁을 만들어 팔 수 있다는 식품업자들의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불량식품은 국민의 안전한 식탁을 위협하는 최대 적이다. 1988년 4월8일자 경향신문 10면에는 ‘유해식품 제조·판매 최대 사형까지’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보건사회부가 부정불량식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