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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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으로 보는 ‘그때’]1970~80년대 중동 건설 붐 - 경향신문 1970~1980년대 널리 불렸던 이 노래, 생각날지 모르겠다. “아빠가 떠나신 지 사계절이 갔는데 낯선 곳 타국에서 얼마나 땀 흘리세요 오늘도 보고파서 가족사진 옆에 놓고 철이 공부 시키면서 당신만을 그립니다….” 1979년 가수 현숙이 불러 중동근로자 가족들을 울린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다. 이 노래는 중동 붐을 상징하는 ‘18번 곡’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당시 중동국가 건설 붐은 대단했다. 넘쳐나는 오일달러를 도로, 항만,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베트남 특수’가 끝나고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한국에 오일달러로 흥청대는 중동은 ‘하늘이 준 메시지’였다. 19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면서 중동 진출 서막을 알렸다. 박..
1973년 7월3일 박정희 대통령, 포항종합제철 준공식 참석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3년 7월3일 경북 포항으로 향했다. ‘산업의 쌀’로 불렸던 철강재를 연간 100t 넘게 생산할 수 있는 포항종합제철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경향신문은 포철 준공식 당일 1면 머리기사와 4면에 해설기사를 실었다. 경향신문은 “경북 포항의 232만평 부지에 내·외자 1215억원을 들여 완공된 포철은 원광(原鑛)으로부터 철강제품에 이르기까지 일관 생산체제를 갖춘 제철소로 조강(粗鋼) 기준 연간 103만2000톤 규모”라고 보도했다. 박 전 대통령은 포철 준공식에서 “1970년 봄 김학열 전 부총리와 박태준 사장, 그리고 나 세 사람이 포철 기공식 버튼을 눌렀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연인원 81만명의 건설 인력과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3배에 이르는 공사비가 들어간 포철을..
1990년 3월13일 - 강호동 천하장사 등극 숙명적인 라이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꼭 25년 전 강호동은 당시로서는 산과 같았던 이만기를 누르고 씨름판을 평정했다. 이날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1990년 3월13일자 11면)은 강호동이 양팔을 벌리고 포효하며 자신이 세상을 평정했음을 과시하는 모습과 이만기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좌절하는 모습을 대비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이만기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강호동에게 진 것에 화가 나 씩씩댔으며 강호동은 승리에 젖어 기고만장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이만기는 분을 쉽게 삭이지 못해 한참동안 라커룸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국 씨름의 전성기는 이들이 활약하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였다.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인간 기중기’ 이봉걸 등에 이어 기술씨름의 달..
1975년 3월4일 서울 강남개발 얼마 전 제2롯데월드가 각종 안전사고로 곤욕을 치를 당시 재계에서는 엉뚱한 괴담이 나돌았다. 제2롯데월드의 끊임없는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풍수지리 탓에 생긴 악재라는 것이다. 괴담의 진원지는 롯데월드 옆 석촌호수 변에 자리 잡은 삼전도비(三田渡碑)다. 1637년 청의 조선 침략 때 남한산성으로 도피한 인조가 45일을 버티다 버선발로 걸어나와 땅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항복의 예를 올린 굴욕의 상징이다. 야사에는 당시 인조의 이마에 유혈이 낭자했다고 한다. 청에 포로로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여성들을 지칭하는 ‘화냥년’(환향녀·還鄕女)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배경이기도 하다. 석촌호수 주변 삼밭나루(삼전도)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1950년대만 해도 한강에서 삼전도까지 나룻배가 다녔다. 1970년대 한강 개발..
1953년 7월3일 간통죄에 쌍벌주의 적용 간통죄는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가졌을 때 적용돼왔다. 지금까지 간통죄는 1953년 신설된 형법 241조 1항 그대로였다. ‘배우자가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相姦)한 자도 같다’는 조항이 62년간 존속돼온 것이다. 간통죄는 간통한 남녀를 똑같이 처벌하는 ‘쌍벌주의’(雙罰主義)를 채택했다. 하지만 1953년 이전까지만 해도 간통죄는 유부녀에게만 적용됐다. 당시 학계와 여성계에서는 유부녀만을 간통죄 처벌대상으로 한 것은 평등권에 위배되기 때문에 위헌 여부를 따져 유부남과 유부녀를 모두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1952년 유부녀의 간통만을 처벌토록 한 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특히 여성계는 간통..
1978년 3월30일 호남선 복선 개통 호남선 철도의 역사는 설움의 역사다. 경부선과 경의선에 비해 철도 개설 때부터 차별의 연속이었다. 대한제국이 철도를 부설해보려 했지만 기울어가는 제국의 ‘희망 사항’이었을 뿐, 대전~목포 간 호남철도는 일제에 의해 경부선의 지선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총독부는 한일병합 후 수탈한 쌀을 수송하기 위해 기민하게 호남선을 착공했다. 260.4㎞ 구간을 3년8개월 만에 뚝딱 해치웠다. 1914년 1월11일의 일이다. 철도는 놓였지만 객차나 철로 등 시설은 형편없었다. 여객보다 화물수송이 주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운행횟수도 경부선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거기다 불결하고 불친절하기까지 해 원성이 자자했다. 해방 이후에도 호남선의 상황은 나아진 게 없었다. 1953년 9월19일자 경향신문은 “호남선과 각 지선의 교통..
1975년 10월15일 문화체육관 개관 김일체육관으로도 불렸던 문화체육관이 문을 연 것은 지금부터 꼭 40년 전이다. 변변한 체육시설이 없던 시절인 1970년대 중반 국내 최초의 민영 종합실내체육시설로 개관했다(경향신문 1975년 10월14일자). 당시로서는 초현대식 스탠드를 비롯해 냉난방 시설 및 중앙식 공기조절장치와 특수조명·음향시설을 갖추었으며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겨울이면 동면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실내스포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한몸에 받았다. 총공사비는 3억5000여만원.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적은 규모지만 당시로서는 거액을 들인 시설이었다. 장충체육관과 쌍두마차였다. 문화체육관은 갖가지 방송프로그램의 공개 녹화장소로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주요 운동경기, 콘서트 장소로도 활용됐다. 대학생들이 젊..
1975년 1월29일 쌀 수요와 관료들의 숫자놀음 얼마 전 우리 국민들이 밥보다 커피를 즐긴다는 보도가 나와 화제였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국민 식생활 빈도(2013년 기준)를 조사한 결과 커피 이용횟수가 주당 12.2회로 가장 많았다. 1인당 하루 2잔꼴이다. 가히 ‘커피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근래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커피 열풍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에 반해 주식(主食)인 잡곡밥은 주당 9.6회로 나왔다. 하루 세끼 중 밥 먹는 비율은 채 절반이 안된다. 밥 외에 먹거리가 다양해진 탓도 있겠지만 일상에 쫓겨 끼니 해결도 만만찮은 직장인들의 고달픈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쌀은 해가 갈수록 소비량이 줄면서 그야말로 처치 곤란이다. 하지만 얼마 전만 해도 사정은 딴판이었다. 1975년 1월29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정부가 쌀 소비를 억제한다는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