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92년 3월8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장남 결혼’

돈과 권력은 비슷한 속성이 있다. 그중 하나가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 형제간에도 마찬가지다. 국내 재벌의 후계 승계는 대부분 권력투쟁 과정을 거쳤으며 이를 통해 재벌이 쪼개지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큰 상처를 남겼다.

지금으로터 23년 전인 1992년 3월7일 잠실롯데월드에서 롯데그룹 장남의 결혼식(경향신문 1992년 3월8일자 13면 보도)이 있었다. 당시 신격호 회장의 나이는 70세였고, 장남 동주씨(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는 38세였다. 남덕우 전 총리가 주례를 맡은 이날 결혼식은 가족행사로 신랑과 신부 측 하객 250명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동주씨의 신부는 미국에서 무역업을 하던 교포의 딸로 동주씨가 미국 내 사업을 하면서 알게 돼 결혼에까지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가 장남의 아내는 한국 여성으로 맞기를 원했고, 외동딸인 신영자씨(롯데복지재단 이사장)가 중매를 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동주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롯데 USA현지법인 부사장으로 경영수업 중이었다.




당시 재계는 동주씨의 결혼보다 롯데그룹의 후계구도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신 회장이 고희(古稀·70세)였고, 장남이 결혼을 하는 만큼 곧 후계승계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에서였다. 재계는 동주씨가 한국롯데를 맡고, 동생인 동빈씨(롯데그룹 회장)가 일본롯데를 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빈씨가 일본 쪽에 뿌리내리기 쉬운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동빈씨는 형보다 먼저 1985년 일본의 유력한 부동산사업가의 딸과 결혼했다. 결혼식에는 나카소네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전·현직 3명의 일본 총리가 참석을 해 화제를 모았다. 그만큼 동빈씨는 일본에 적응하기가 용이했을 수 있다.

이와 달리 동주씨는 한국인을 아내로 맞았고, 결혼식 장소도 서울로 정했다. 이를 두고 동주씨가 한국롯데를 맡기 위한 포석이라는 말도 나왔다. 동주씨는 한국롯데의 일에는 거의 관여치 않았고, 서울 방문 기회도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서울 결혼식이 한국롯데의 후계경영을 승계하기 위한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예상과 달리 한국롯데는 동빈씨, 일본롯데는 동주씨가 맡았지만 한동안 이 구도가 이어지자 형제간 한·일 롯데 분점이 굳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올 들어 동주씨가 가지고 있던 자리에서 하나둘씩 쫓겨났고, 결국 일본에서 기반을 잃게 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그동안 재벌 후계승계의 과정은 ‘골육상쟁’을 수반했다. 승자는 아버지도, 장남도, 아우도 아니었다. 오로지 힘의 논리만이 통했다. 정치판이 그런 것처럼.


박종성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