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1999년 1월1일 유로화 공식 출범

새 밀레니엄 개막을 1년 앞둔 1999년 유럽은 한껏 들떠 있었다. 그해 1월1일부터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11개국의 단일통화 ‘유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유로의 도입은 11개국이 같은 화폐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미국에 맞서는 거대 경제블록의 탄생을 의미했다.

경향신문은 1999년 1월1일자 1면에 ‘유로화 오늘 공식 출범’ 기사를 실었다.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EU는 브뤼셀에서 재무장관 회의를 열어 11개국 통화의 유로화 교환비율을 확정, 발표했다”고 전했다. 11개국 통화의 유로화 교환비율은 실물경제 상황과 재정적자, 인플레이션 등을 반영해 결정됐다. 독일 마르크화는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1.96마르크를 내고 1유로를 받았다. 네덜란드는 2.2길드, 프랑스는 6.56프랑, 그리스는 340.75드라크마를 내고 1유로를 받았다. 2002년 1월1일부터 유통된 유로화 지폐는 5·10·20·50·100·200·500유로 등 7권종이다.지폐 앞면에는 ‘유럽의 열린 마음’을 의미하는 문과 창문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유럽과 전 세계의 ‘소통과 관계’를 뜻하는 유럽 지도와 다리가 그려져 있다.






유로화가 발행된 지 13년째인 올해 유로존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한 그리스가 디폴트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할 당시 우려의 시각이 많았다. 경제 펀더멘털이 튼실한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과 달리 제조업 기반이 취약하고, 수출 비중이 낮은 관광국가인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면 잃는 것이 많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됐다. 유럽의 약탈적인 금융자본은 그리스 국채에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유로화 가치가 급등하자 그리스 관광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경상수지 적자폭은 커졌고, 국가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두 차례의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는 유로존 채권국에게 부채상환과 긴축안 이행을 강요받았다.

그리스는 지난 5일 국민투표를 통해 채권국들이 요구해온 긴축안에 ‘오히(OXI·반대)’표를 던지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채권국들은 만족할 만한 긴축안을 내놓지 않으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를 용인할 수도 있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지난 12일 유로존 정상들과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3년간 최대 860억유로(약 108조원)를 지원받는 대신 채권국들이 제시한 국유자산 매각, 연금삭감, 세금인상 등의 긴축안을 수용했다. 그리스로서는 ‘경제 사망선고’를 가까스로 피했지만 가혹한 조건의 긴축안 이행이란 큰 짐을 지게 됐다.

유로존 채권국들은 그리스 사태를 겪으면서 유로화 지폐 앞면에 문과 창문을 새겨넣은 본래 의미인 ‘유럽의 열린 마음’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되레 그리스로 향하는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냉혹한 경제논리 앞에서 ‘열린 마음’은 사라지는 것일까.


박구재 기획·문화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