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서 읽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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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法古創新) 새것을 만들려는가? 새것을 잘 만드는 비법은 옛것을 잘 배우는 데 있다. 연암 박지원은 에서 ‘법고창신론(法古創新論)’을 펴면서, 옛것을 잘 배운 사람으로 한신을 들었다. 한신의 군대는 연전연승하면서 조나라를 쳐들어갔다. 정형을 통과해야 했는데, 좁고 긴 통로여서 군대 행렬이 길게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나라에선 이를 노려 후미를 기습하여 보급선을 끊어 놓자는 계책이 나왔다. 기세등등한 한나라 군대와 정면대결하기보다는 포위하여 굶주림에 빠뜨리자는 것이다. 이 계책은 채택되지 않았다. 첩자를 통해 이 소식을 들은 한신은 기뻐했다. 정형을 무사히 통과한 한신은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했다. 이른바 ‘배수진’이었다. 한신은 또 기습할 병사 2000을 선발해 조나라 진영 부근 산 속에 매복시켰다. 그리고 조나..
경계를 넘어 다산 정약용은 공대 출신인가? 수원화성을 설계했다기에 하는 질문이다. 우문(愚問)이다. 요즘같이 전공이 구분된 사회에 갇힌 사람의 발상이다. 그러긴 해도 당시에는 대체로 기술을 천하게 여겼으니, 대다수 식자층은 요즘 학제로 치자면 전형적인 문과 학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18세기 실학자들은 문과적 학문 이외에도 천문학, 수학 등 과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담헌 홍대용은 나주에서 나경적과 함께 혼천의(渾天儀)와 자명종을 만들기도 했다. 성호 이익은 서양 역법이 우수하다고 평가하면서 말했다. “무릇 기기(器機)와 수리(數理)의 법은 후대에 나온 것이 더 공교하다. 비록 성인의 지혜라도 미진한 바가 있으니, 후세 사람이 늘리고 고침으로써 마땅히 오래될수록 더욱 정밀해진다.” 다산도 ‘기예론’에서 ..
정조의 독서법 다산 정약용은 방대한 저작을 내어 ‘저술의 달인’이라 할 만하다. 그 비법은 무엇일까? 아들이 양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독서하는 사람이라면 양계도 뭔가 달라야 한다. 농서(農書)를 잘 읽고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 보아라. 나아가 ‘계경(鷄經)’을 짓도록 해라. 그런데 저서 방법은 “여러 책에서 닭에 관한 설을 가려 뽑아 차례로 모으면” 되었다. 책 만들기 참 쉽다.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가려 뽑아 옮겨 적는 것을 초서(초書) 또는 초록(초錄)이라 한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초서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문제는 가려 뽑는 기준이다. 이것은 저서의 목차로 구체화된다. “무릇 초서의 방법은 반드시 먼저 내 뜻을 정해 내 책의 규모와 목차를 세워야 한다. 그런 후에 뽑아내어야 일관된..
글쓰기와 전쟁 연암 박지원은 ‘소단적치인’이란 글에서 글쓰기를 전쟁에 비유했다. 글자(字)는 병사(士)요 뜻(意)은 장수(將)다. 이때 활용한 고사가 ‘장평대전’이었다. 그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중국의 전국시대.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장평에서 대치했다. 조나라에는 ‘염파’와 ‘조사’라는 뛰어난 장수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 조사는 죽고, 노장 염파만 남았다. 진나라의 공격에 염파는 방벽을 굳게 하고 응전하지 않았다. 원정군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하다. 진나라는 초조했다. 계책을 내어 소문을 퍼뜨렸다. “진나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조괄이 장수가 되는 것뿐이다.” ‘조괄’은 죽은 조나라 명장 조사의 아들이다. 조사가 살아있을 때 부자간에 병법을 토론한 적이 있는데, 조사가 아들 조괄을 당할 수 없었다. 조괄..
실학적 공부법 다산 정약용은 “배움이란 깨달음”이라 했다. 깨달음은 ‘잘못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아서 부끄러워하고, 뉘우쳐서 고친다. 이것을 배움이라 한다.” 또 “하나를 들어주면 나머지 세 모서리를 뒤집고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것이 배우는 사람의 책무다”. 실학자들의 학문 태도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실제적·실천적 자세이다. 성호 이익에게 “경전을 연구하는 것은 장차 세상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담헌 홍대용에 의하면, 앎과 실천은 뗄 수 없다. 실천해야 앎도 실천도 온전한 것이 될 수 있다. 독서만 하는 것은 여행안내서만 읽고 여행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다산에게 학문이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이었다. 둘째, 낮은 자세이다. 학문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깨닫고 묻는 데서 ..
운명 만들기 역사에서 옳고 선한 것이 반드시 승리하는가? 성호 이익은 ‘독사료성패(讀史料成敗)’라는 글에서 역사의 십중팔구는 도덕성과 무관하다고 보았다. “천하의 일은 시세(時勢)가 최상이고, 행·불행이 다음이요, 옳고·그름은 최하이다.” 그는 역사의 결정요인으로 시세와 우연을 중요하게 보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헛된 것인가? 성호는 ‘조명(造命)’이라는 글에서 천명(天命), 성명(星命), 조명의 세 가지를 말했다. 성명이란 자연의 상호작용에 따라 생기는 길흉으로, 점술가들이 헤아리는 것인데 믿고 취할 것이 못된다. “천명만을 말한다면 착한 일도 상 줄 것이 없고 악한 일도 벌 줄 것이 없다.” 성호는 조명에 주목했다. 조명이란 본디 ‘임금과 재상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성호는 “..
저술의 고민 김태희 | 실학21연구소 대표 “옛날 학자들은 책이 없어서 걱정이었고, 지금 학자는 책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옛날에는 책이 없어도 영웅과 어진 사람이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책이 많아도 인재가 날로 줄어듭니다. 어찌 시대가 서로 다른 때문이겠습니까? 실은 책이 많은 게 빌미가 된 것입니다.” 담헌 홍대용이 선배에게 보낸 편지글의 일부다. 담헌은 책을 쓰는 행위가 이기는 데 힘쓰고 박식함을 자랑할 뿐 쓸데없는 빈말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선비란 배운 것을 실행하는 데 힘쓰는 것이 우선이다. 실행하지 못하고 밝히지 못하는 처지에서 후세가 걱정되면 부득이 책을 써서 후세 사람들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실천과 실심(實心)·실사(實事)를 중시했던 담헌은, 선배가 의례(儀禮)에 관한 책을 쓴 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
의협(義俠) 김태희 | 실학21연구소 대표 장복선(張福先)은 평양감영의 창고지기였다. 평안감사 채제공이 창고를 조사해보니, 은 2000냥이 부족했다. 장복선은 가난하여 결손을 메울 도리가 없었다. 사형감이었다. 이튿날 참형(斬刑)에 처하려고 옥에 가두었다. 소식을 듣고 평양사람들이 다투어 술과 음식을 보내왔다. 옥에 갇힌 장복선은 태연자약했다. 그는 종이와 붓을 달라 했다. “내 죽는 거야 애석할 것이 없으나, 남들이 나를 ‘관의 물건으로 사리사욕을 채웠다’고 의심할까 두렵다. 부끄럽지 않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의 초상과 혼인 등에 쓴 것과, 환곡을 못낸 사람과 아전을 도와준 것들을 낱낱이 기록했다. 모두 합하니 2000냥이 넘었는데, 자신을 위해 쓴 것은 없었다. 이튿날 사형 집행일,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이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