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

[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거짓말같이 떠난 영웅본색의 사나이

2003년 4월1일 만우절에 거짓말 같은 뉴스가 전파를 탔다. 홍콩을 대표하던 미남 배우 장국영의 사망 소식이었다. 터무니없었기에 방송국의 만우절 이벤트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는 홍콩의 한 호텔 24층에서 몸을 던져 하늘나라로 떠났다. 죽음의 미스터리를 두고 음모론이 나왔고 ‘베르테르형 모방자살’이 이어지기도 했다.

경향신문 1995년 11월22일자 34면에는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이 출연한 <동사서독>의 영화해설 기사가 실렸다. 장국영은 홍콩 누아르의 진출과 함께 한국에 이름을 알렸다. 주윤발·적룡·장국영이 출연한 <영웅본색>(1986년)은 뒷골목 영화 신드롬을 일으켰고 주인공들은 지금의 한류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영화에 매료된 사내들은 장국영의 앞가르마(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한 동룡의 헤어스타일)를 따라 했고, 주윤발처럼 발목 근처까지 내려오는 긴 트렌치코트를 입고 애꿎은 성냥을 씹고 다녔다. 열성팬치고 홍콩을 가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중국말도 모르면서 장국영이 부른 영화 주제가를 열창했다.

장국영은 1956년 홍콩에서 태어나 영국 유학까지 갔으나 중도 포기하고 연예인의 길로 들어섰다. 1970년대 중반 홍콩 ATV의 음악경연대회에서 2등상을 수상하며 가수로 출발했다. 이어 TV와 영화, 가요계를 넘나들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빛을 못 보다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 출연으로 이름을 알렸고 <천녀유혼> <아비정전> <패왕별희> <동사서독> <해피투게더> 등에서 열연을 펼쳐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별이 되었다.



그는 관객들을 자신의 배역에 빨려들게 하는 마력을 가졌다. 관객들은 <아비정전>을 보며 그의 축 늘어진 ‘난닝구’와 헐렁한 ‘빤스’에 반했고, <천녀유혼>에서는 순진함을 넘어 바보 같은 매력에 빨려들어갔다. 그는 영화 속에서 탄탄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두 발을 땅에 디디지 못하고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성 정체성은 지속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젊었을 때는 여자친구와 사랑을 했고 나이 들어서는 남성을 사랑하며 17년간 함께했다.

그러나 세상은 관대하지 않았다. 그는 <패왕별희>의 비련의 주인공 ‘우희’와 닮았다. 초패왕은 우희를 사랑했으나 우희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났다. 장국영은 우희를 연기하면서 비슷한 처지를 한탄했을지 모른다. 그의 죽음에 대해 우울증이라는 말도, 새로운 남자친구 때문이라는 말도 돌았다.

그러나 그를 가장 잘 대변한 건 그가 <아비정전>에서 읊조린 대사였다.

“다리가 없는 새가 살았다고 한다.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잠이 들었다.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는 날이었다.”

영화에서 아비(장국영)는 ‘한 발을 잃은 새’를 말하며 자신을 비관했다. 결국 정처 없이 흔들리던 장국영도 아비가 말한 새와 같은 운명을 택한 것은 아닐지. <응답하라 1988>에 열광하는 시청자가 많아지면서 장국영의 영화 <영웅본색>이 재개봉했다. 이번 주말에는 극장에 갈 시간을 비워둬야겠다.



박종성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