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

컴퓨터 백신 만든 ‘젊은 천재’ 안철수

경향신문 1991년 7월7일자 27면에 “컴퓨터 ‘공부벌레’ 사장님 됐다”는 기사가 등장했다. 기사는 “20대 대학생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각종 소프트웨어(운용 프로그램)를 개발, 컴퓨터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로 시작했다.

‘한국판 빌 게이츠를 꿈꾸는 젊은 천재들’이 만든 프로그램으로는 서울대생 이찬진씨팀이 개발한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처음 꼽혔다. (주)한계소프트의 한글 소프트웨어, 조선대생 유승룡씨가 개발한 통신용 소프트웨어 ‘메디콤’, 서울대 윤재수씨의 통신용 소프트웨어 ‘한토크’, 단국대 의대 강사 안철수씨의 ‘백신Ⅱ 플러스버전’ 등이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프로그램들이라고 했다. 이는 2일 창당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경향신문에 처음 등장한 기사다.

당시 기사는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있는 안철수씨는 최근 국내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브레인, LBC, 예루살렘, 일요일, 스톤 등 5종류의 컴퓨터 바이러스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백신Ⅱ 플러스버전’을 개발하는 데 성공, 바이러스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을 마련했으며 소스코드까지 공개해 많은 사람들에게 자체 퇴치 프로그램의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칭찬했다.

그는 서울대 의대 학생, 대학 강사,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 백신 회사 최고경영자(CEO) 등 부모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스펙을 쌓아갔다.





그러던 안 대표는 1999년 9월9일 1면에 등장했다. “신당 발기인 26명 잠정 확정” 기사에서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속한 새정치국민회의는 새로운 여당 창당 작업 중이었다. 새천년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안철수 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 대표 이름이 거론됐다. 그는 미술평론가 유홍준, 지은희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과 함께 이름이 나왔지만, 결국 민주당에 몸을 싣지는 않았다.

꾸준히 지명도를 쌓아가던 안 대표는 2001년 12월28일자에도 등장했다. 한국 대학생들이 가장 호감을 느끼며 존경하는 IT·벤처기업 경영자 1위였다. 안철수연구소 안 사장은 28.9%,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은 19.3%, 표문수 SK텔레콤 사장은 11.7%였다.

안 대표가 정치권 인사로 본격 등장한 것은 2011년 9월3일자 1면이다. 청년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던 그는 “(서울)시장이 혼자 바꿀 수 있는 게 많다”며 출마를 검토하고 있음을 공식화했다.

이후 그는 박원순 후보에게 서울시장 후보직 양보, 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단일화, ‘새정치연합’ 창당 작업, 민주당과 합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등 숨가쁜 행보를 보였다. 재·보선 패배 후 대표직에서 물러났던 그는 ‘친노 패권’ ‘당내 혁신 불가능’ 등을 이유로 탈당을 선언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탈당파와 옛 새정치연합 창당 세력을 모았고, 직접 창당했다. 1999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 시절 발기인으로 거론된 지 16년 만에 돌고 돌아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와도 합당한 터였다.



최우규 정치·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