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

신체의 부자유 넘어선 ‘무한 상상력’ 호킹

불치병, 순애보적 사랑, 천재성, 뛰어난 학문적 성과, 그리고 순탄치 않은 결혼….

우리 시대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로 평가받는 스티븐 호킹(74). 그는 움직이는 자유를 박탈당했지만 우주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 뛰어난 과학자로 우뚝 섰다. 그리고 영화 같은 이야기들로 모자이크 된 삶을 살아왔다.

 

그는 고개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 계단에서 어이없이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반복돼 병원을 찾자 의사는 그에게 근위축성측색경화증(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지금 같은 물리학자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호킹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읽고 쓰는 일에 지금같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대신 강연하고 시험점수를 매기느라 연구를 제대로 못했을 것이므로 결국 루게릭병이 나를 이론물리학자로 만든 셈이다.”

 

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을 당시 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렇지만 병마와 싸워 이겼고  괄목할 업적을 이뤘다. 경향신문(1996년 10월2일자 29면·사진)은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라이프 스토리를 실었다. 그는 1942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옥스퍼드대에 입학한 그는 다른 학생에 비해 어렸고 왜소했으며 내성적이었다.

그는 루게릭 진단을 받기 전 만난 제인 와일드라는 문학도와 결혼했다. 둘은 사랑과 헌신으로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했다. 영국의 한 TV는 둘의 감동적인 결혼생활을 카메라에 담았다. 호킹과 와일드의 결혼생활 이모저모를 보여주면서 부부가 다정히 손을 맞잡고 앉아 잠자는 아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클로즈업시켰다. 두 사람은 세 자녀를 두었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던 둘의 사랑은 1990년 파국을 맞았다. 호킹은 헌신적인 아내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고 상패와 메달이 쌓여갈수록 아내와의 불신의 골은 깊어갔다. 둘이 헤어진 이유는 종교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우주를 연구하며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호킹과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와일드는 물과 불처럼 화합할 수 없는 관계가 됐다. 호킹은 이혼 후 자신을 간호해주던 간호사 일레인 메이슨과 재혼했으나 2006년 헤어졌다.

 

호킹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왼손의 손가락 한 개와 얼굴 근육 일부분이다. 폐렴으로 기관지 제거수술을 받아 목소리마저 잃었다. 의사소통 방법은 비서가 알파벳을 적은 카드를 들어보이면 그중 그가 원하는 것이 나왔을 때 눈썹을 올리는 방식이다. 1분에 단어 10개가 고작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1988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시간의 역사>를 저술했다. 몸은 움직이지 않지만 유일하게 자유로운 머리로 만든 것이다.

 

호킹이 최근 한국 젊은이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무한한 상상을 통해 지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주인공은 바로 다음 세대 청년들”이라며 분발을 촉구했다. 그가 뛰어난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는 이유는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론물리학에 천착했기 때문이다.

 

박종성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