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

형사법정에 서는 롯데가 ‘별당마님’ 서미경

롯데가의 ‘별당마님’으로 불린 서미경씨(57)가 법정에 서게 됐다. 일본에 머물며 소환 조사에 불응한 그를 검찰이 재판에 넘긴 것이다. 서씨에겐 10년 전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94)의 롯데홀딩스 주식 3.21%를 증여받으면서 297억원을 탈세한 혐의가 걸렸다.

 

신 총괄회장은 “절세”라고 했지만, 그룹 정책본부에 지시하고 홍콩과 싱가포르의 페이퍼컴퍼니까지 끼운 검은 거래였다. 이 탈세액은 출발선이다. 검찰은 최종적으로 탈세와 롯데 일감을 몰아서 받은 배임액이 3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도 그의 부동산과 주식을 압류하기 시작했다. 계산이 다른 서씨 쪽과는 법정 다툼이 불가피해졌다. 22세 때 롯데가의 ‘막내 사모님’을 택한 인생과 부가 심판대에 선 격이다.

 

 

서씨는 열 살 때인 1969년 영화 <피도 눈물도 없다>에 출연했다. 일곱 살 때부터 TBC 어린이합창단원으로 활동하다 은막에 데뷔한 것이다. 서울 금호여중 2학년 시절인 1972년 그는 300 대 1의 경쟁을 뚫고 ‘미스롯데’에 뽑혔다. 1990년대의 김지호·심은하, 요즘의 수지나 설현처럼 그가 1970년대 흑백TV를 누비며 원조 ‘CF 요정’이 된 발판이었다. 훗날 부군이 된 신 총괄회장도 심사위원이었다.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이라는 CM송을 히트시킨 그의 끼는 경계가 없었다. 영화(협객 김두한·미인·홍길동), 드라마(청실홍실·상노), 연극(어린왕자), 뮤지컬(아이러브 마마)까지 대표작이 줄잇고 가요·어린이 프로그램 MC도 맡았다. “잠 푹 자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던 시절이다.

 

그러던 서씨가 충무로와 방송가의 입방아에 오른 것은 1977년 즈음이다. 그해 10월27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인터뷰(사진)에서 서씨는 “지난날 멋모르고 뛰어든 연예활동에 대해 집 안에 틀어박혀 갖가지 궁리에 잠겨봤다”며 잠적 6개월 만에 KBS 드라마 <토지>의 귀녀 역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한다고 알렸다. 두 달 전 경향신문 ‘TV주평’ 코너에 “요즘 전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말이 나온 뒤였다. 그러나 재개한 연예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씨는 1981년 “당숙이 있는 일본으로 유학 간다”며 22세의 나이에 돌연 은퇴했다.

 

소문이 꼬리를 물다 신 총괄회장의 세 번째 부인으로 확인된 것은 1988년이다. 5년 전 낳은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33)을 호적에 올린 때다.

 

50대 중반의 서씨는 수천억원대로 추정되는 재력가다. 서울 방배동 고급빌라와 서래마을·동숭동·신사동 빌딩, 김해 상동의 10만평 가까운 땅, 롯데쇼핑·롯데홀딩스 주식 지분을 갖고 있고, 롯데시네마 매장을 운영하는 유원실업과 롯데백화점 내 냉면·비빔밥집 등을 운영해 왔다. 37살 위 부군과 사실혼 관계로 살면서 부동산을 물려받고 롯데의 일감을 받아 특수관계회사로 키워온 알짜 사업들이다.

 

한국 국적과 국내에 재산을 갖고 있는 서씨는 꼼짝없이 형사법정에 서야 할 처지다. 형사소송법상 두 차례 출석하지 않으면 결석 재판이 시작되고, 검찰은 유죄 판결 때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할 수 있다. 여권이 말소돼 법적으론 일본 체류도 비자 유효기간까지만 보장된다. 롯데 수사의 유탄을 맞은 서씨의 은둔 생활이 35년 만에 막다른 길에 섰다.

 

이기수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