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

첫 불명예 퇴진…최경희 전 이대 총장

최근 이화여대 최경희 전 총장(54)만큼 극에서 극을 오간 이는 드물 것이다. 국내 ‘최고 여자대학’의 총장이라는 자긍심을 가졌던 그가 최고 권력자 ‘비선 실세’의 비위 연루 의혹을 버텨내지 못하고 사퇴했다.

 

최 전 총장은 모범생의 전형이었다. 대구 남산여고를 거쳐 이화여대에서 과학교육으로 학사, 석사를 마쳤다. 미국으로 유학 가서 탬플대 과학교육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창덕여중과 용산중 교사를 거쳐 1994년부터 이화여대 사범대 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해왔다.

 

 

최 전 총장은 경향신문 1997년 5월29일자 19면에 처음 등장했다(사진). 당시 이화여대 과학교육학과 교수던 그는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가 펴낸 <환경을 생각하는 과학교육>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할 수 있는 환경실험과 실천사항을 제안했다.

 

최 전 총장은 극적이지 않지만, 탄탄한 경로를 밟아왔다. 이화여대 학생처장, 연구처장·산학협력단장, 한국환경교육학회 회장, 이화여대 사범대학 학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20여년 동안 딱 한 번 이화여대 문 바깥으로 나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5월 교육문화비서관에 선임(경향신문 2006년 5월27일자 10면 보도)됐다. 당시 청와대는 “과학교육과 관련한 다수의 저서를 발간했으며, 교육방식에 있어 과학기술사회 교육철학에 바탕을 둔 과학 교육을 강조해왔다”고 발탁 이유를 댔다. 그는 청와대에서 2008년까지 재직했다. 2014년에는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 통일교육자문단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그가 2014년 8월 52세에 이화여대 총장에 선임되자 이목이 집중됐다. 이화여대 사상 첫 이공계열 총장이다. 1980년 이래 가장 젊고, 역대 4번째로 젊은 총장이었다.

 

총장 선임 때 한 학생은 학교 게시판에 일화를 소개했다. 이 학생은 등록금 옴부즈맨 제도(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닌 학생에게도 긴급한 경우에 장학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이용하려고 최 교수를 찾았단다. 최 교수는 “나도 대학 때 건강도 좋지 않은 데다 가정 형편까지 나빠져 좌절했다”며 위로했다.

 

그는 ‘혁신 이화’를 내걸었다. 미래지향적 교육과 기초학문 지원, 이화의료원 준공 등의 목표를 세웠다. 취임 1년 만에 신산업융합대학을 신설하고, 다양한 사업을 내세워 정부로부터 80억원의 지원금을 타냈다.

 

그러나 ‘불통’이 발목을 잡았다. 여러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학생과 교수 등 구성원의 동의를 얻지 않고 강행했다. 그러다 교육부의 평생교육단과대학(평단)사업 선정으로 추진했던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이 알려지면서 갈등이 바깥으로 터져나왔다. 학생들은 본관을 점거하고 총장 사퇴를 요구했다.

 

최 전 총장은 학생들에게 대화를 계속 제의했다. 하지만 청와대 비선 실세라는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부정입학 논란이 터졌다. 또 정씨가 최 전 총장 측근들에 의해 학사 관리에서도 지속적인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줄을 이었다.

 

결국 최 전 총장은 19일 사임했고, 학교 이사회는 21일 사표를 수리했다. 130년 이화여대 역사에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한 총장은 그가 처음이다.

 

최우규 정치·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