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양국 시민활동가, 100년을 말하다

(15) ‘역사교과서 왜곡’ 왜 끊임없이 이어지나

ㆍ“패권 망상 사로잡힌 日우익, 미래전략으로 교과서 도발”

이신철 |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상임공동운영위원장


2001년 일본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에서 만든 역사교과서 한 권이 한·일 양국관계를 심각하게 위협하면서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양국관계는 역사상 가장 긴밀한 사이로 발전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각급 학교의 교과서 검정이 발표될 때마다 양국관계는 위협을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교과서 문제는 악화돼 갔다. 일본 우익의 ‘위험한 교과서’는 더욱 많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되었다. 2001년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은 0.039%에 불과했다. 그것도 농아학교처럼 비교적 쉽게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공립 특수학교에서 주로 채택됐다. 그러던 게 2005년엔 채택률이 10배인 0.4%가 되더니 2009년엔 급기야 1.7%를 넘어섰다. 그동안 새역모는 두 세력으로 분열되었고, 그에 따라 문제의 역사왜곡 교과서도 후소샤판과 지유샤판의 2개로 늘어났다.



 
2008년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헌법9조세계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없애자 전쟁, 지키자 헌법9조!’라는 구호가 적힌 선전물을 승려가 들고 있다. 현재 일본에는 7400여개의 헌법9조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되어 활동 중이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10년 검정결과가 발표된 초등학교 교과서의 경우 문부과학성에서 직접 독도(일본명 다케시마)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표기를 강화하도록 지시, 수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게다가 2008년 발표된 중학교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는 교실에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가르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 해설서는 중학교 교과서 집필의 지침이 되는 것이어서 새로운 검정결과가 발표되는 2011년에는 전체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기술이 이루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악화되는 일본 우익교과서의 역사인식 왜곡문제의 핵심은 역시 우익정치세력의 미래전략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새로운 일본을 만들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미래세대의 교육문제를 들고 나왔고, 학생들의 인식변화를 위한 도구로 역사인식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일본의 상을 ‘보통국가 일본’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보통국가는 군대를 가질 수 있는 국가를 의미한다. 물론 이미 일본은 자위대라는 실질적인 군대를 가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자위대는 세계 4위권을 벗어나지 않는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 우익이 바라는 것은 외부세력의 침략에 맞서는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위의 무력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분쟁에 무력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군대를 갖길 원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최대 걸림돌은 역시 ‘평화 헌법’ 9조이다. 일본 헌법 9조는 전쟁포기를 규정한 조항으로 국제분쟁 해결에 무력행사를 영원히 포기하고, 이를 위해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우익 교과서는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또 그 이유로 일본이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공헌을 해야 하고, 그것을 위한 해외파병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물론 우익들의 이런 노력은 아시아의 패권을 다시 한 번 손아귀에 쥐어보려는 의도나 다름없다.


일본의 우익교과서는 일본의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주장하면서 미래세대에게 일본의 근·현대사를 긍정적으로 볼 것을 촉구한다. 이들은 식민지 경영과 아시아·태평양 침략전쟁을 반성하는 역사인식을 자학사관으로 비판한다. 이들은 한국의 식민지 경영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그로 인해 한국이 근대화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해방 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아시아 침략전쟁은 ‘아시아 해방전쟁’ ‘대동아 전쟁’으로 미화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서양의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대한제국을 일본이 구원해준 것이며, 서양 제국의 식민지였던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일본은 하나가 되는 아시아를 꿈꾸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전개하다 보니, ‘천황’(일왕)의 이름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일본인들의 죽음도 미화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키나와전에 대한 서술이다. 



 


2005년 새역모의 ‘새로운 역사교과서’ 채택을 반대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는 홋카이도 시민들. 이 집회에는 한국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도 참여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2001년 첫 모습을 드러낸 새역모의 ‘위험한 교과서’ <새로운 역사교과서>.



오키나와에서는 9만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전쟁기간에 희생되었다. 동굴로 피란한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군의 강요에 의해 자식들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죽게 한 다음, 자신들은 폭사했다. 이러한 죽음을 일본 우익들은 ‘천황’을 위한 애국적 죽음으로 포장한다. 우익세력뿐 아니라 문부과학성은 오키나와 주민의 집단 사망에 일본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적시한 교과서의 서술을 삭제해버리기도 했다. 정부 방침에 반발해 오키나와 주민들은 몇 차례에 걸쳐 10만명 안팎의 주민들이 모여 항의집회를 열었고, 불충분하긴 하지만 정부 방침의 후퇴를 이끌어 냈다.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일본 우익교과서를 시대착오적인 애국주의, 천황주의를 내세운 전쟁미화의 ‘위험한 교과서’로 규정하고 채택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천황’의 이름으로 죽음을 강요당했던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우익들의 교과서공격은 사실 2000년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미군정시기에 만들어진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교과서를 공격하는 활동이 이미 195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일본에서는 이를 제1차 교과서공격이라 일컫는다. 두 번째 교과서공격은 80년대에 일어났다. 이때는 일본 교과서들이 아시아침략에 대해 ‘진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문제가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정부는 아시아 국가들의 항의를 받아들여 교과서 서술에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근린제국조항’이라는 규정을 만들어 사태를 수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시민들의 공분으로 인해 모아진 성금으로 독립기념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제3차 교과서공격은 90년대 들어 재개되었다. 일본 자민당은 전후 50주년을 기해 국민들의 역사인식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내걸고 아시아·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 재규정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를 역사교육에 반영하기 위한 국민운동단체로 새역모가 등장했다. 이들은 중학교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삭제하라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것은 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이후, ‘위안부’ 문제를 기술한 교과서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1년에 이르러 새역모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교과서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시기에 한국에서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에 맞서려는 시민운동이 등장했다. 일본의 시민단체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나아가 중국, 북한까지 함께 하는 연대활동으로 발전해나갔다. 남·북·일·중의 연대활동은 새역모의 위험한 교과서의 채택률을 낮추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들의 연대활동은 기존의 국가별 운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시민운동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편협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틀을 깨고 평화공생의 아시아를 위한 시민사회의 준비가 시작된 것이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아시아역사연대)

2001년 4월 90개 관련단체와 연구자, 시민활동가 등이 모여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를 결성하면서 출범했다. 아시아역사연대는 단체 결성 직후부터 일본의 어린이와교과서네트워크21, 중국의 사회과학원과 사회과학원출판사 등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일본 우익교과서 반대 공동 행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역사인식과 동아시아평화포럼’을 결성해 해마다 세 나라의 연구자, 교사, 청년, 시민활동가 등의 연구와 활동을 교류하면서 함께 동아시아평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의 역사교육 관계자, 아시아 지역 활동가 등을 초청하여 교류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 같은 활동을 기반으로 2005년에는 한·중·일 최초의 공동역사교재인 <미래를 여는 역사>(한겨레출판)를 공동 저작해 교과서운동의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한편, 한·중·일의 미래를 만들어갈 청소년들에게 평화지향의 공동의 역사인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세 나라에서 번갈아가며 ‘한·중·일 청소년역사체험캠프’를 9년째 진행해오고 있다. 이 밖에 한·중·일교사·청년평화포럼 등을 개최해 세 나라가 평화 공동체를 모색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02-720-4637, www.ilovehistory.or.kr)



▲ 글쓴이 이신철은



성균관대 연구교수이면서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창립멤버이다. 현재 이 단체의 상임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에는 <한일 근현대 역사논쟁> <북한 민족주의운동 연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