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어제의 오늘

1911년 ‘모나리자’ 도난

목정민 기자
ㆍ“도난” 보도 쏟아지자 작품 유명해져

꼭 100년 전인 1911년 8월22일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화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성과가 없었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로 수사 범위를 넓히면서 모나리자를 찾아다녔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당시 경찰은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까지 용의선상에 올렸다. 이들은 조사 끝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2년 뒤인 1913년 3월12일 사람들이 도난 사실을 잊어갈 즈음 범인이 잡혔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미술상이 받은 편지가 증거가 됐다.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으로 보낸 이 편지에는 “모나리자를 내가 갖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 절도범은 모나리자 보호 액자를 제작할 때 유리공으로 참여한 빈센초 페루자였다. 페루자가 그림값으로 제시한 금액은 10만달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절도 사건이었지만 페루자가 받은 형량은 고작 7개월이었다. 페루자는 작품 모나리자가 탄생지인 이탈리아에 있지 않고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에 격분해 그림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게 돈을 받고 팔아 넘긴 그림이다.

모나리자의 원래 이름은 ‘지오콘다(Gioconda)’다. 피렌체 상인인 프란체스코 지오콘다를 위해 그의 부인 엘리자베타를 그린 것이다. 이탈리아어로 ‘모나’는 유부녀를 뜻하고 ‘리자’는 엘리자베타의 약어다.

모나리자는 도난 사실이 알려진 뒤 더욱 유명해졌다. 그때까지 모나리자는 다른 르네상스 걸작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던 터다. 각종 언론이 루브르 박물관의 소홀한 관리실태를 비판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모나리자와 작가 다빈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면서 세간의 관심이 모나리자에 집중됐다.
 
파리 시민들은 그제서야 프랑스가 그런 걸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곤 그림이 걸려 있던 빈 공간이라도 보기 위해 줄을 섰다.

지금도 하루 수만명의 관람객이 이 그림을 보러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 현재 이 그림은 특별히 지키는 사람이 있을 뿐 아니라 방탄유리로 덮여 있다. 보험금도 아주 높아 1962년 미국 뉴욕으로 이동 전시될 때 보험금만 2억달러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