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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경그룹 선정 파문

정진호 기자
ㆍ“노태우 사돈 기업 특혜” 논란

SK텔레콤이 노태우 정권의 특혜를 받아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돼 거대 통신기업으로 성장했다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르다. SK텔레콤은 제2 이동통신 신규 사업자가 아닌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 때 지분 인수를 통해 통신업에 진출했다. 진출 시기도 노태우 정부가 아니라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다.

1992년 제2 이동통신 민간 사업자 선정을 통해 1896년 한국에 전화가 처음 설치된 이후 100년 가까이 정부가 독점해 온 통신업에 처음으로 경쟁체제가 도입된다.

당시 재벌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에 따라 4대 그룹의 참여가 배제된 속에서 선경, 포항제철, 코오롱, 동양, 쌍용, 동부그룹 등 6개 컨소시엄이 경쟁에 뛰어든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사업에 걸맞게 당시 6개 컨소시엄에는 국내외 사업체 440여곳이 참여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7월 1차 심사에서 선경, 포항제철, 코오롱 등 3개 그룹으로 후보가 압축됐고, 8월20일 제2 이동통신 전화부문 사업자로 선경그룹(현 SK그룹)이 선정된다.

하지만 선경그룹은 최종현 회장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이라는 이유로 특혜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여당인 민자당은 4개월 남은 대선에 악재라며 사업자 선정 취소를 종용했고, 야당은 국민정서를 외면한 친인척 비리라며 정부를 압박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선경그룹은 일주일 뒤인 8월27일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고(사진·경향신문 1992년 8월28일자 1면), 체신부는 사업자 선정을 차기 정권으로 이양한다고 발표한다. 사돈 덕 보기는커녕 사돈 탓에 다 된 밥에 재 뿌린 모양새가 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최근 발간된 회고록에서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 나와 청와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사전 각본대로 움직였다’는 모함을 받고 있다”고 억울함을 피력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1 이동통신인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와 제2 이동통신 신규 사업자 선정이 동시에 추진된다. 눈물을 머금고 사업권을 반납했던 선경그룹은 누구보다도 제2 이동통신 선정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제2 이동통신 사업자를 전경련에서 자율적으로 선정한다는 방침을 정한다. 문제는 당시 전경련 회장이 공교롭게도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이었다는 것. 가장 유력한 후보였지만 선경그룹이 선정된다면 또 다시 특혜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선경그룹은 또 한번 제2 이동통신 신규 사업권을 포기하고 신규 진출보다 자금 부담이 큰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입찰에 참여한다.

1994년 1월 선경그룹은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24%를 4370억원에 인수하며 그토록 원했던 통신업에 진출하게 된다.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는 그해 2월 포철을 주도 사업자로 하고 코오롱을 1대 주주로 하는 신세기이동통신이 선정된다. 선경의 한국이동통신은 1997년부터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연간 12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반면 신세기이동통신은 2002년 SK텔레콤에 합병됐다. ‘승자의 축배’와 ‘승자의 저주’는 기업이 하기 나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