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한국전쟁 60년

(5)-1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ㆍ“아직도 ‘좋은 전쟁’ 믿음… 노근리서 전쟁 속성 깨달아야”

손제민기자



미국은 한국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해 많은 인명 손실을 겪은 나라다. 그 나라에서 한국전쟁은 종종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된다. 올해는 전쟁 60주년이라고 해서 미국 내에서도 한국전쟁을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제 여든 줄에 접어든 백발의 퇴역군인들이 자신이 참전했던 현장을 보려고 한국으로 오는 단체여행도 그중 하나다. 이달 초 한국을 찾은 수십명의 미군 참전군인들을 동행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온 미국의 AP통신 기자 찰스 핸리(63)는 “미국인과 한국인들은 한국전쟁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전쟁은 오늘의 미국 모습을 결정한 중요한 사건이다. 바로 그 전쟁 때문에 전 지구적으로 압도적인 군사대국 미국이라는 나라의 출현이 가능했고, 그 이후 미국 외교정책의 뼈대도 형성되었다. 한국전쟁 때문에 미국 지도부는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를 군사적으로 막아내야 한다고 공식 결정하게 된 것이다.”



핸리 기자는 1999년 미군이 한국전쟁 때 한국인 민간인을 학살한 이른바 ‘노근리 사건’을 특종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미국 정부로부터도 강한 반발을 샀던 그의 보도가 AP통신 내에서 1년 가까이 잠자고 있다가 타전된 뒤, 민간인 학살 사건 폭로로 이어지며 미국 내 한국전쟁에 대한 기존 상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핸리 기자가 한국전쟁 중에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전화에 짓밟힌 먼 나라 무지렁이 삶에 대한 연민보다, “영문도 모른 채 태평양 저 편의 낯선 땅에 떨어뜨려진 채 총질을 해야 했던” 자신의 동포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군의 관점에서 한국전쟁은 20세기의 가장 힘든 전쟁이었다. 혹독한 더위와 추위, 형편없는 보급품, 훈련과 전투 준비의 부족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미군이 참전한 현대전 가운데 인구 대비 피해가 가장 큰 싸움이기도 하다.”



애초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참전 미군들이 겪는 후유증(외상후스트레스장애)이다. 핸리 기자는 “한국전쟁에 참가한 미국인들 상당수는 지금도 왜 미국이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내전에 끼어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후유증은 동료들이 옆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거나 자기 손으로 민간인을 죽인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에 돌아가서 악몽을 꾸지 않은 이가 없다. 이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전쟁 직후에도 나타나지만, 그들이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포함해 전 생애를 관조하게 되는 노년으로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핸리 기자는 숨겨진 민간인 학살 사건들을 공개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보통 사람들이 전쟁의 진정한 속성을 알고 나서야 전쟁을 멈추기 위한 행동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쟁이 무엇을 남겼는지 계속 추적하는 작업이 있어야 사람들이 적어도 불필요한 전쟁을 막으려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과 한국의 많은 언론들은 전쟁의 영광과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에 너무 오래 지배돼 왔다.”



이는 한국전쟁 발발 60년이 지났음에도 많은 언론들이 영웅적인 전쟁 경험담, 참전국들의 우정 등에 초점을 맞추는 국내 분위기에 대한 지적이다.



핸리 기자는 정전협정 이후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시도들이 실패한 이유를 북한과 미국에서 찾았다.



“우선 북한의 리더십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좀더 평화를 이끄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꼽고 싶다. 또 하나는 그와 동전의 양면인데, 미국 지도부와 국민들이 미국에 대한 북한의 편집증적 두려움의 뿌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북한의 병적인 두려움은 다름 아닌 1950~53년 북한을 거의 절멸시킬 듯했던 미국의 폭격에 기인한다.”



한국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의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큰 말이다.



핸리 기자가 이번에 동행한 퇴역군인들 중에는 “남한의 번영 혹은 민주화를 보면서 ‘나는 이제야 나의 참전이 가치 있는 일이었음을 알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핸리 기자 역시 그들의 생각에 공감한다. 특히 KTX 열차를 타고 내려갈 때엔 “에너지 효율이 명백히 좋아 보이는 이런 열차가 왜 미국에는 없을까” 하는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게 핸리 기자의 생각이다. 이번에 동행한 참전군인들 가운데 현재에도 남북 간에 계속되고 있는 전쟁 같은 상황을 목도하고 무척 복잡한 심경을 내보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훈장을 주렁주렁 단 참전군인들은 한국인들 사이에는 굳건한 한·미동맹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참전군인들 역시 이를 자랑으로 여긴다. 하지만 진정한 한·미동맹은 그들이 전쟁 이후 살아낸 하루하루의 고통을, 그들이 얼마나 전쟁을 혐오하는지를 이해한 뒤에야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에 동행한 참전군인들을 지켜보면서 핸리 기자가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