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한국전쟁 60년

(5)-3 “땅 한 뼘 더 얻기 위해 목숨 바쳤다니…”

ㆍ미 참전용사 존 맨리 ‘60년 만의 방한’

손제민기자



“남북한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한국에 오지 않으려 했습니다. 동료들을 잃은 기억이 너무 아프게 남아 있고, 도대체 왜 싸워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욕에 사는 존 맨리(80)는 1952~53년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38선 곳곳에서 고지를 뺏고 빼앗는 전투가 벌어지던 52년 여름 인천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맨리가 배치된 곳은 경기도 임진강 서쪽의 ‘올드 볼디(Old Baldy)’라 불리는 ‘불모 고지’다. 그는 미 육군 2사단의 정찰병으로 중공군과 인민군의 동태를 감시하는 일을 했다. 어느 날 밤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참호가 무너지고 많은 동료들이 숨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봤다.



“왜 멀리서 온 많은 젊은 생명들이 여기서 죽어야 하나, 아니 왜 허비되어야 하나….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죽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쟁이 끝나고 미국에 돌아간 뒤 한동안 한국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꽤 흘러 한국전쟁의 역사를 조망하고 나서야 그 당시가 휴전협정이 진행되던 때였고, 자신의 싸움은 땅 한 뼘 더 얻기 위한 싸움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허탈했다고 한다.



숨진 동료들의 한은 살아남은 그가 평생 짊어질 짐이기도 했다.



“유엔이 막 만들어진 때에 한반도에서 터진 이 무력충돌은 유엔군으로서 당연히 막아내야 할 전쟁이었죠. 하지만 전쟁이 행해진 방식은 어느 쪽 할 것 없이 매우 어리석고 쓸 데 없는 것이었어요.”



그는 이달 초 몇몇 참전 동료들과 함께 한국을 다녀갔다. “60년 세월이 정말로 많은 변화를 낳았더군요. 한국의 발전상을 보는 것으로도 큰 위안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엔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통일이 되기 전엔 한국에 오지 않으려 했던 바로 그 이유다.



“당시 전쟁 중에 총질을 당하거나 붙잡히지 않고 고지를 내려와서 북쪽의 저지선을 지나 북으로 걸어올라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어요. 지금처럼 포장된 도로와 ‘총알기차(KTX를 지칭)’를 타고 가서 당시 적으로만 보였던 사람들을 만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요.”



그는 언제쯤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