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한국전쟁 60년

(6)-1 한국전쟁 어떻게 끝낼 것인가

ㆍ불안한 정전체제 ‘평화체제 전환’ 다시 논의해야

손제민기자



지난 5월20일 민·군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 발표 직전 정부 당국자들은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한 국제법 문서집의 세부조항들을 열심히 뒤적였다. 바로 정전협정이다. 천안함 조사결과에 따라 국제적으로 북한을 규탄하고 제재를 가하기 위해 법적 근거가 필요한데 정부는 그것이 정전협정 12항(적대행위 정지), 15항(한국 육지에 인접한 해면 존중)이라고 본 것이다. 이 조항을 발견한 당국자들은 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고 한다.





 



1953년 7월27일 북한·유엔·중국군 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은 체결 직후부터 각측이 위반하는 일이 잦아 전체 63개 조항 중 군사분계선 위치를 표시한 몇 개 조항 외에는 사실상 효력을 잃은 휴지조각으로 여겨졌지만, 한반도에서 일만 터지면 ‘전가의 보도’처럼 불려나왔다. 진작부터 ‘위반을 위한 협정’이라는 평가가 지배했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한반도가 여전히 국제법적으로 전쟁 중에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푯말이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낸다는 말은 ‘북진통일’ ‘흡수통일’ 등의 과격한 말로 표현된 적도 있지만, 90년대 이후에는 대체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로 받아들여져 왔다. ‘발포 중지’로 교전을 막고, 정치회담을 통해 평화체제로 이행하자는 것이 정전협정 체결 당시 합의이기도 했다. 하지만 54년 4월 제네바 정치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며 한반도 평화는 정전협정에 불안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불가침 조항이 포함됐지만, 그것은 평화체제로 가는 작은 걸음일 뿐이었다. 평화체제는 남북관계를 넘어서 주변 강국들의 이해가 맞물리는 문제였고, 논리적으로도 정전협정 당사국의 일원인 미국, 중국의 관여가 필요했다.



평화체제 논의가 국제적 차원에서 다시 제기된 것은 97년 12월 제네바에서 열린 남북·미·중의 4자회담에서였다. 당시는 한국 정부가 김일성 주석 사망을 계기로 대북강경 정책을 펴고, 북한이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응수하는 등 한반도의 위기감이 고조됐고, 북한 핵 문제로 한반도 평화 방정식이 더욱 복잡해진 때였다. 회담은 6차례 이어졌으나,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우선 의제로 고수하는 바람에 99년 무산됐다. 북한은 북·미를, 남한은 남북을 고집하는 당사자 문제가 관건이었다.



북한이 한국을 평화협정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던 태도에 변화를 보인 것은 2005년에 이르러서다. 9·19 공동성명을 도출한 제4차 6자회담에서 북한은 처음으로 한국 측에 ‘남측의 평화협정 참여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은 남북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 역시 2005년 7월부터 변화했다고 회고한다. 남북 양측의 양보가 9·19 공동성명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9·19 공동성명은 “직접 관련 당사국들”이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것으로 명기됐다.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남북한과 중국, 미국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초기 조치를 담은 2·13 합의가 2007년에 나왔고, 평화체제 구축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정권 교체와 대북정책 급선회로 평화체제 논의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북한은 올 초까지도 9·19 공동성명에 기초한 평화체제 구축을 제의해왔다. 지난 1월11일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시작하자”며 “회담은 6자회담 테두리 내에서 진행될 수도 있다”고 제의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북한 뒤 “남북·미·중 4개국이 평화협정 협상에 직접 관련이 있으며, 이는 모든 6자회담 당사국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해 북·미 간 공감대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한국 정부는 “비핵화를 지연시키려는 전술로 보인다”면서 썩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는 요구를 거부할 명분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서해상에서 천안함이 침몰했다. 한국 정부는 천안함 사건이 해결되기 전에는 평화체제 논의는 물론 6자회담도 재개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천안함 사건이 엄중한 사건이긴 하지만, ‘6자회담 무용론’을 펴온 현 정부로서는 기존의 대북 강경책을 고수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됐다는 해석도 많다.



6자회담 무용론은 현 정부가 6자회담을 북한 비핵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근 몇 차례에 걸쳐 “6자회담을 7년 동안 했는데, 북한은 그 사이 핵 실험을 두 번이나 했다. 지금과 같은 6자회담은 왜 하는 것인가”라며 6자회담에 대한 의문을 표출했다. 9·19 공동성명에 따르면 6자회담의 가장 큰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이긴 하지만, 비핵화 과제는 북·미 관계 및 북·일 관계 정상화, 경제 및 에너지 협력,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와 맞물려서 함께 돌아갈 때 실현 가능하다. 북한이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낄 때에 핵을 포기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장용석 평화연구소 연구실장은 “비핵화 문제만 따로 떼어놓고, ‘북한이 비핵화 하지 않기 때문에 다 소용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평화체제 논의에 응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북한이 핵을 개발할 시간을 더 벌어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 당국자들의 공식·비공식 언급을 종합하면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가 수년 내에 붕괴할 것으로 보고, 전략적으로 인내하는 쪽에 무게를 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전략적 인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태한 외교”(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가 ‘전략적 인내’를 강조하며 북한의 체제변화만 기다리고 있는 동안 북핵 문제는 더 풀기 어려워지고, 한반도는 지금보다 더 불안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