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한국전쟁 60년

(6)-2 [특별기고]평화체제 논의 우리가 주도를

송민순|전 외교부 장관




6·25 전쟁 발발 60년,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 전쟁 종식의 바람직한 방법은 통일일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위한 대내외적 환경이 조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상에 대해 남북은 물론 미국과 중국이 공감대를 만들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런 배경하에 2005년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 즉 한반도 문제의 잠정적 해결방식(Modus Vivendi)이라는 인식 아래 소위 ‘9·19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한반도의 비핵화, 관계정상화와 경제협력을 통한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동북아 다자안보대화라는 중첩적 장치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공존 질서를 우선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 평화의 요건들을 갖추면서 종국적인 통일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9·19 공동선언 이전에도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을 시작으로 많은 평화체제 논의가 있었다. 이 모두 진전과 후퇴를 거듭하다 좌절되었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몇 가지 근간을 생각해 본다.



첫째, 평화는 신뢰에 기초한다. 서로 대치하고 있으면서 어느 날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한다 해서 바로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상호신뢰 없는 평화의 합의는 한낱 종이에 불과하다. 신뢰의 바탕은 행동의 축적이다. 작지만 흔들리지 않는 실천의 반복이 바로 신뢰의 핵심이다. 가장 포괄적이고 완전에 가까운 남북 간 평화의 문서는 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의미있는 합의는 실행되지 못했다. 94년 미·북 간 제네바 합의도 상호 불신과 국내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9·19 공동성명도 그 벽 앞에 주저앉아 있다.



둘째,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체는 남과 북이다. 북한은 물론 국내 일각에서까지 북·미 평화협정을 거론하는데 이는 논리와 합리를 벗어난다. 6·25는 미·북 간 전쟁이 아니었고,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할 책임도 남과 북에 있다. 평화체제는 남과 북이 합의하고 미국과 중국은 휴전협정 서명 관련국 자격으로 지지서명하는 형식이 되어야 사리와 현실에 맞다. 미·북 간에는 평화협정이 아니라 관계정상화 협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미 92년 한·중 관계정상화의 전례가 있다.



셋째, 책임 있는 관련 당사국 간에 평화체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체가 평화의 일부이다. 동시에 비핵화되고 민주적이면서 주변국 모두에 우호적인 통일한국의 존재양식에 대한 공동비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계전략 차원에서 한반도를 보는 미·중은 상대방 영향력하에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을 서로 원치 않는다. 앞으로 상당 기간 미·중관계는 협력과 갈등이 계속 교차할 것이다. 그래서 미·중 공히 9·19 공동성명이 지향하는 한반도 장래의 중간 기착지로 우선 가보자는 것이다. 이 와중에 “급변 사태”와 “자유민주주의 통일”과 같은 종착지로의 직행이 바로 가능한 것처럼 공론하는 것은 평화로 가는 힘든 진전마저 가로막는다.



넷째, 주한미군 문제는 평화체제와 직접 결부시킬 일이 아니다. 미군은 한국의 초청으로 주둔하고 있다. 한국은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반영하여 주한미군의 규모·임무·운영방식을 미국과 합의하는 것이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전환 합의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주한미군 때문에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 어렵다고 주장하거나, 북·미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지난 95년 6·25전쟁 발발 45주년에 맞추어 미국의 한 방송대담에 나간 적이 있다. 사회자가 미국의 6·25 참전은 명분이 애매했던 “잊혀진 전쟁”이라는 화두를 꺼내기에, 필자는 만약 당시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지금 한국은 물론 서태평양지역에 자유와 민주가 번성하고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이 전쟁은 잊혀지지도 끝나지도 않았다고 강조하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평화로 가는 길은 멀다. 6·25로 돌아가려는 듯 세상이 어지럽다. 한국과 미국은 기나긴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