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한국전쟁 60년

(7) 한국전쟁이 남긴 과제 - 한·미·중·일 학자 인터뷰

ㆍ“한반도 분단은 세계 문제… 북과 평화체제 구축을”

설원태 선임기자·조운찬 베이징 특파원 ·김진우 기자



한국전쟁은 지난 60년간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해왔다. 한국전쟁이 남긴 구조적 문제들이 지금도 우리 사회를 얽매고 옥죄고 있어서다. 경향신문은 ‘한국전쟁 60년-끝나지 않은 전쟁’ 기획을 통해 한국전쟁이 남긴 과제들을 되짚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해봤다. 시리즈 마지막으로 한·미·중·일 등 한국전쟁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국가에서 한국전쟁 문제에 천착해온 석학들에게 한국전쟁의 유산과 화해·평화의 해법을 물었다.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선즈화 중국 화동사범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를 직접 만나 한국전쟁의 성격과 원인에서부터 영향과 인식,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과 각 국의 역할 등 6개의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 이를 통해 각 국의 시각에서 60년을 맞은 한국전쟁의 ‘안과 밖’을 살피고 나아가 동북아 평화 담론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코자 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1) 한국전쟁의 성격

국제분단의 미·소 냉전시기
한반도 내부서 일어난 내전
국제전 성격으로 변해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 한국전쟁은 여전히 안전한 과거에 머물지 못하고 있고, 끝나지 않은 유산들이 동북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전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한반도 침략, 청일전쟁, 러일전쟁과는 다른 전쟁이다. 세 전쟁은 외세에 의해 시작됐지만, 한국전쟁은 한반도 내부에서 일어난 내전이다. 하지만 남북한 사이의 전쟁은 미·중전쟁으로 성격이 변했다.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 국제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내전’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인들에게는 ‘잊혀진 전쟁’ 또는 ‘알려지지 않은 전쟁’이다. 한국전쟁의 핵심 내용은 미국 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쟁이 진행 중일 때 미국 사회에서는 이에 관한 언론 검열이 있었다. 특히 매카시즘 선풍으로 인해 한국전쟁에 관한 정보가 유통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전쟁 진행 중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휴전 후에는 급기야 잊혀지고 말았다.



선즈화 화동사범대 교수 = 민족적·국내적 배경이 깊은 국제전이다. 동북아가 이미 미·소 냉전에 들어가기 시작한 시기에 발발했다. 이 시기에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는 중국과 소련이 동맹을 맺고, 북한이 사회주의에 편입된 것이다. 다른 사건은 미국이 국가안보회의(NSC) 68호 문서를 내걸며 세계전략의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한 일이다. 유럽은 47년부터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억지정책을 폈는데 50년 들어 미국을 포함한 세계적인 범위로 확대됐다. 이는 한국전쟁 이전에 이미 아시아 냉전이 형성됐다는 뜻이다. 미·소 사이의 전쟁은 일촉즉발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전쟁은 발발하기 무섭게 국제전으로 변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 1000년간 유지되던 단일민족국가가 분단된 것을 통일하려는 통일전쟁으로서 내전의 측면이 있고, 미·소 냉전이 한반도에 내화한 국제적 측면이 있는데 국제적 측면이 더 강조돼야 한다.



분단도 미·소 합의에 의한 국제분단이고, 주요 정책결정이 모스크바·워싱턴·베이징·도쿄에서 이뤄져 전쟁 양상도 국제적이었다. 종전 협상과 과정, 종전 이후 질서 등 거의 모든 측면에 국제 냉전 요소가 관철되는 과정에 단일민족이 분단됐다는 역사적 과정이 만난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2) 한국전쟁의 원인
통일 위한 남북 지도자 대결
1945년부터 전운 분위기
미·중·소의 개입으로 확대



와다 = 한국전쟁에 관한 구 소련의 문서들이 비밀 해제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북한군이 전면전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1950년 6월25일 정오쯤 이승만 대통령은 주한 미국 대사에게 “현재의 위기는 한반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으로 “한반도를 통일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커밍스 = 45년부터 점진적으로 고조돼 오던 전운이 50년 6월25일 마침내 폭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유엔이 한국 측에 참전하고 중국이 북한 측에 참가하면서 국제전이 됐다. 나는 당초 스탈린이 북한의 전쟁계획을 지원할 의도를 갖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그가 마음을 바꿨는지 추측할 뿐이다. 아마도 스탈린은 미국의 NSC 68호 계획이 국방비를 3~4배 증가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안 다음 북한의 남침 계획을 지원하려고 마음먹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선즈화 = 한국전쟁은 실상 대국들이 아시아에서 벌인 정치대결이다. 스탈린은 50년 1월 갑자기 한반도 정책을 바꾸었는데, 이는 중·소동맹 조약 체결 과정에서 받은 전략적 손실을 메우고 부동항을 얻으려는 목표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미국의 군사전략은 원래 한반도와 소련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한반도 전쟁이 발발한지 이틀 뒤 곧바로 정책을 바꿔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하게 됐다. 소련의 확장을 막기 위함이었다. NSC 68호 문서의 주목적은 바로 소련에 대한 냉전을 아시아 지역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이러한 전략은 미·소 간 분쟁을 야기했다. 김일성의 38선 침략은 단지 미국의 전략배치를 앞서 실현하는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다.



박명림 = ‘48년 질서’는 분단과 통일의 가능성을 동시에 포함했던 유동적 질서였지만 이후 2년 동안 남북한 리더십에 의해 전쟁으로 발전한다. 분단은 국제적으로 왔지만 이를 평화적으로 관리할 임무와 능력은 남북한 리더십과 민중에게 있다. 이런 점에서 김일성의 국토안정론과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은 비판받아야 한다. 미·소도 비판받아야 한다. 소련은 미국을 견제하고 중국을 통제하기 위해 한반도 문제를 활용하려고 했고, 미국은 동아시아가 격동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정책이 모호했다.



 


선즈화 화동사범대 교수






(3) 한국전쟁의 인식
한 - 6·25 기원 강조 ‘역진’
미 -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
중·일 - 경제적 회복 기회



와다 = 일본인들은 한국전 도중 일본이 무엇을 했는지 잘 모르지만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다. 일본인들은 요코다 항에서 미군의 B29 폭격기가 매일 폭탄을 탑재해 북한에 투하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한국전쟁 60주년이지만 일본에서는 이에 관한 학술대회가 하나도 열리지 않는다.



커밍스 = 아마존에서 ‘한국전’을 검색해 보면 한국전에 관한 책은 불과 몇 권밖에 없다. 매슈 리지웨이 등 참전 장군들이 쓴 것들이 나올 뿐, 새로운 정보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미국인들은 한국전에 대한 지식을 별로 갖고 있지 않다. 미 군정을 실시했다는 사실도 모른다. 이에 비해 베트남 전쟁이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사람들은 한국전쟁을 싫어했고, 전쟁은 곧 잊혀졌다.



박명림 = 미래로 나아가려면 전쟁의 기원보다 종결을 기억하고, 전쟁의 과거보다 평화의 미래를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6·25를 강조하는 역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0년간 한국전쟁은 분단과 권위주의, 남북대결의 강력한 역사적 자원이었지만 이제는 이를 넘어 평화와 화해로 나가야 한다. 이념에서 이성으로 나가야 한다. 전쟁에 긴박될수록 대결과 증오, 적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평화통일은 전쟁으로부터 어떻게 이성적으로 멀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선즈화 = 이론적으로 볼 때 마오쩌둥은 아시아 혁명의 책임자로서 북한의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대만과 티베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김일성이 군사행동을 강행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마오쩌둥이 북한군 지원을 결정한 것은 중·소동맹의 존재를 확인시키고자 함이다. 이를 통해 중국 공산당은 소련의 전면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전쟁 속에서 경제를 회복시키고 정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4) 한국전쟁이 각 국가와 국제정세에 미친 영향
지구촌 냉전구조 심화
한국의 남북분단 고착
동아시아 군비경쟁 촉발



와다 = 일본은 미국의 한국전쟁을 지원하는 군사기지가 됐다. 해상보안군, 철도, 선박, 적십자 간호사 등이 동원됐다. 인천상륙작전에는 일본인 승조원들이 참가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사실 ‘전후 일본’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이후 형성된 일본의 체제를 가리킨다. 헌법 9조(전쟁 포기), 미·일안보조약, 미군 주둔 등 3가지 요소는 두 전쟁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다.



커밍스 = 한국전쟁으로 미국의 국방비는 4배 증가했고, 방위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또 전 세계 수백 곳에 군사기지를 설치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 자리잡게 됐다. 한국전쟁은 또한 미국 경제를 끌어올렸고, 일본 경제도 활성화시켰다. 반면 동아시아는 양분됐다. 스탈린은 자유진영과 ‘깊은 냉각’을 갖게 됐고, 베트남전은 이 같은 양극화를 더욱 확대했다. 한국전은 또 “전쟁에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오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가르쳐줬다. 미국은 한반도에 군대를 보낼 때만 해도 이후 60년이 지나도록 한반도에 자국군을 유지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선즈화 = 한국전쟁은 냉전의 세계구조를 확립했다. 미국은 한·미동맹, 미·일동맹 등 지역동맹을 통해 중국 및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경제봉쇄와 포위 전략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또 동북아를 장기적으로 동요와 긴장 상태에 빠지게 했다. 중·미·소의 삼각관계는 크게 변했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국제적 긴장의 근원지로 남아 있다. 한국전쟁은 중·소동맹을 강화시켰고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높여 주었으며, 중국은 소련의 대대적인 원조로 경제를 회복했다.



박명림 = 한국전쟁은 세계 냉전지형을 최종 봉인했다. 전쟁 전 논의됐던 동아시아판 집단 안보는 중단됐다. 반면 한·미동맹은 제2의 한국전쟁을 방지함은 물론, 중국을 봉쇄하고 소련을 저지하며 일본을 견제하는 지역동맹의 역할을 했다. 더 중요한 측면은 한국이 처음 중심국가와 동맹을 체결해 자기 운명에 대한 발언권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은 정전협정에 참여하지 않아 미국을 통해서만 한반도 안보와 평화를 말할 수 있는 모순적 선택을 했다. 한국전쟁은 국내적으로는 분단을 고착시키고 한반도를 ‘최무장지대’로 만들었다. 최악의 영향은 거대한 인명손실이지만 거꾸로 전쟁의 참혹성에 눈뜨게 해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5) 한반도 평화 구축 방안

냉전시대 낡은 관념 청산
관계국들 북과 직접 대화
긴장완화에 역량 쏟아야



와다 = 한반도 평화는 궁극적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에 달려 있다. 2000년 6월15일 남북한은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큰 진전을 이뤘다. 남한은 인구 규모, 민주화, 산업화 등 여러 측면에서 북한보다 강력하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불안감을 갖고 있다. . 남한이 여러 측면에서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북한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다. 남한에 대한 의존이 심화하면서 옹색함을 느낀 북한이 점차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불리한 주변 상황에 둘러싸여 있고, 특히 이명박 정권은 북한에 대해 직접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천안함 사태 같은 위기가 닥쳐왔다고 볼 수 있다.



선즈화 = 냉전 종식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예전보다 나은 국제환경을 만들어냈지만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몇 개의 최소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한반도와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은 냉전시대의 낡은 관념들을 훌훌 털고 정상적인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구원은 털어내고 평화발전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 아울러 관련 당사국들은 자국과 상대국의 이익을 분별하고 협상으로 서로를 이해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와 진보적인 제도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실현시켜야 한다.



박명림 = 통일을 과정적 개념으로 돌리고 평화를 우선시하는 사유혁명이 필요하다. 남북한에서 최소 안보수준을 넘는 과대한 무기와 군사는 평화와 복지로 돌려야 한다. 남한은 압도적인 사회·경제 역량을 남북 긴장완화에 쓸 준비를 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남한의 보복의지 표명만으로도 주가와 환율이 흔들리는 것에서 보듯이 안보의 평화적 관리는 중요하다. 대결보다 평화 비용이 훨씬 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도 한국전쟁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조적으로 전면 전쟁이 불가능한데 국가의 모든 자원을 선군주의와 핵 무장에 집중해 한반도를 위험으로 몰고가고 있다. 북·미관계 정상화도 필요하다.



(6)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각 국의 역할

한, 자유 등 가치지평 넓히고
미, 한반도 정책 변화 필요
일, 대북 관계개선 노력을



커밍스 = 미 행정부는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미·북 직접 접촉이 있었지만 부시 및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미국은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해야 한다. 평양에 대사관을 설치해야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특사 등의 방법으로 북·미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이것만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와다 = 지난 10여년 동안 일본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여한 것이 거의 없다. 북·일관계는 현재 최악의 상황이다. 일본은 북한과 접촉할 수 있는 모든 통로를 막아버렸다. 그 결과 북한은 더욱 고립돼 있다. 일본은 한·미·중에 일본인 납치문제를 도와달라고 하지만 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6자 회담에서도 북한에 연료를 지원하지 않아 적극적 역할을 못하고 있다. 간 나오토 현 총리 등 향후 일본 정권 지도자들은 대북 접근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일본은 우선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힘을 써야 한다. 일본은 또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지원해야 한다. 사실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를 먼저 개선함으로써 미·중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적이 있다.



박명림 = 한국 문제의 해결 없이는 동북아 평화가 불가능하고 동북아 안정 없이는 한국 발전이 불가능하다. 한반도 분단은 여전히 동북아의 불안 요인이라는 점에서 한국인들은 동북아인들에 미안해 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력이나 군사력, 과학기술 등의 측면에서 중위 또는 선진국가지만 평화나 민주주의, 자유, 평등 등 가치적 차원에서는 OECD 최하위다. 가치적 측면을 통해 동아시아 공통의 가치지평을 만들 수 있는 공통준거의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