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한국전쟁 60년

(5)-2 “접경지, 분단과 경계 다차원 현실 이해를”

ㆍ백령도 주민 정체성 연구 프랑스 줄레조 교수

손제민기자



“백령도와 같이 접경지대 주민들을 군사안보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일면적입니다. 가령 이들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주민들은 이중의 고통을 경험합니다. 군사적 위기감은 물론 꽃게잡이 산출량과 민박집 손님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경제적 희생을 입기 때문입니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43)는 정부·여당의 천안함 안보정국 조성에도 6·2 지방선거에서 인천·경기와 강원의 최전방 유권자들이 여당에 더 많은 표를 주지 않은 현상을 이해할 만한 일이라고 본다. 2004년부터 한반도 접경지역 주민들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백령도와 강원 철원에 들어가 지낸 경험이 있는 줄레조 교수는 “분단과 경계의 다차원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줄레조 교수는 지난해 겨울 철원군청에 내걸린 현수막 문구를 한글로 읊었다. “역사와 미래의 고장, 통일을 준비하는 철원.” 그는 이 문구에서 철원 주민들이 현실의 사회·경제적 불만을 통일이라는 환상적인 미래에 기대어 해소하려는 모습을 읽었다고 한다.



“이 경계선이 정상적인 국경선이었으면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전쟁 중인 경계이기 때문에 그런 환상이 더 커지는 겁니다. 이들은 남북한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봅니다.”



땅의 구획을 나누는 경계선에 관심이 많은 줄레조 교수에게 한반도의 분단선은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경계선이다. 남북한 두 나라의 국경선이라는 점에서 ‘국제적인 경계’이고, 또한 ‘코리안’들이 사는 곳을 나눈다는 점에서 ‘민족 내 경계’이고, 어떠한 국제조약에 의해서도 그어진 적이 없다는 점에서 ‘비(非)경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북한 사이의 경계선은 지금도 형성 중입니다. 1945년부터 53년까지 끊임없이 선의 위치가 바뀌었고, 53년 이후에도 그 일대의 모습이 계속 변해왔지요. 때론 남북한 간 경쟁으로 비무장지대의 너비가 바뀌었고,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가 들리지 않기도 합니다. 관광명소가 되는가 하면 교전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줄레조 교수는 이 경계선이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뜨거운 경계’이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처럼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비경계’라고 말한다.



줄레조 교수는 한반도의 분단선이 단지 남북한 사이의 정치적 경계를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나라 밖에서는 재외동포들 내의 경계를 낳고 국내적으로는 진보와 보수, 부자와 빈자, 내국인과 외국인, 남성과 여성 등 다양한 구분을 낳은 경계로 확장되는 점에 주목한다. 모든 구분이 한반도 분단선을 상상하는 한국인들의 관념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졸레조 교수는 정권에 따라 ‘경계 다시 만들기’와 ‘경계 허물기’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한국의 분단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길은 ‘경계 허물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