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양국 시민활동가, 100년을 말하다

(9) 사라져야 할 ‘야스쿠니의 어둠’

ㆍ멀쩡히 살아있는데 ‘영새부’ 이름 안지워 ‘살아있는 영령’


즈시 미노루 | 일본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야스쿠니신사 문제위원회 위원장



‘우미 유카바(바다에 가면)’라는 시가 있다. 749년 오토모노 야카모치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 나오는 시다. 1937년 일본 정부가 국민정신 강조주간을 제정했을 당시 NHK가 ‘국민가요’라는 이름 아래 이 시에 곡을 붙여 처음 방송했다. 노부토키 기요시라는 이가 작곡한 것을 테마곡으로 삼은 셈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 라디오로 부대 전멸소식 등을 전할 때 앞부분에 ‘우미 유카바’를 내보내 유명해진 노래다. 그렇게 군국주의의 대표곡이 탄생한다.




2006년 도쿄 촛불행동에서 참가자들이 도열해 ‘노 야스쿠니(YASUKUNI NO)’라는 글씨를 만들고 있다. | 즈시 미노루 제공





당시에도 ‘천황’을 위해 만들어진 ‘우미 유카바’ 전문은 이렇다. “바다에 가서 물에 적신 시체가 되더라도/산에 가서 풀이 나는 시체가 되더라도/천황 곁에 생명을 내던질 수 있었으니/후회는 없다.” 야스쿠니신사의 생각은 이 시로 상징된다. 천황의 이름 아래 치러진 전쟁은 모두 ‘성전’이며, ‘천황’을 위해 죽어도 후회가 남지 않는다고 하는 말에 야스쿠니신사의 사상이 모두 들어있다. 도조 히데키를 필두로 한 A급 전범의 야스쿠니신사 합사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지만, A급 전범을 합사해야만 야스쿠니신사인 것이다.




야스쿠니신사가 만든 팸플릿은 “대동아전쟁이 끝났을 때, 전쟁의 책임을 한 몸에 짊어지고 스스로 생명을 끊은 분들도 있습니다. 또한 전후, 일본과 싸운 연합군의 명색뿐인 재판에 의해 ‘전범’으로 다루어져 무참하게도 생명이 끊긴 일천 수십 분들…. 모두 신으로 모셔지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아시아·태평양전쟁을 포함해 천황의 명령으로 행한 모든 대외전쟁은 ‘성전’이었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책임인식 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다.




현재 야스쿠니신사의 제신(祭神) 원명부인 ‘영새부(靈璽簿)’ 등의 이름 말소 청구재판이 도쿄·오사카·오키나와의 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도쿄에서는 2007년 2월 한국인 군인·군속 유족 10명과 생존자 1명이 제소했다. 원고의 한 사람인 김희종씨는 살아 있음에도 야스쿠니신사의 제신에 이름이 오른 ‘살아 있는 영령’이다. 김씨 자신이 야스쿠니신사에 직접 찾아가 영새부 등에서 이름을 지워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당연히 야스쿠니신사 측도 당사자가 살아 있음을 확인했지만, 영새부에서 이름 지우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일본인의 경우 군인 유족원호법 등에 따라 유족에게 연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생존자 확인이 곧바로 이뤄지지만, 일본 정부가 군인 유족연금 지급 대상에서 빼버린 한국인 군인·유족들에 대해서는 생존 여부 확인절차도 없었다. 유족에게 연락하거나 승낙도 없이 멋대로 야스쿠니신사에 ‘영령’으로 합사하고 있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김씨를 비롯한 ‘살아 있는 영령’ ‘살아 있던 영령’의 존재가 최근에야 드러나고 있다.




A급 전범 합사를 추진한 마쓰다이라 나가요시(松平永芳) 야스쿠니신사 6대 궁사는 그 경위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취임 전부터 ‘모두 일본이 나쁘다’라는 도쿄 재판 사관을 부정하지 않는 한, 일본의 정신적 부흥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합사할 때 옛날에는 (천황에게) 상주해 재가를 받았습니다만, 지금도 관습에 의해 상주서를 어소(천황이 있는 곳)에 가지고 갑니다.”




중국에서는 ‘임금의 말씀은 땀과 같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천자의 말씀은 나온 땀이 체내로 돌아가지 않듯 한 번 입으로부터 나오면 취소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이 일본에 전해져 ‘천황으로부터 나온 말은 취소할 수가 없다’ 또는 ‘실수가 없다’고 해석된다. ‘천황의 재가를 얻은 제신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영령이 된 이상 살아 있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영새부의 이름 지우기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천황에게도 실수가 있다’는 증명도 된다. ‘천황=천황 사상’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절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1935년 당시 조선신궁 전경.




일본 헌법 9조는 ‘①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②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기타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수한 전력을 갖는다면서도 ‘자위대’란 이름을 쓰고 있다. 평화를 희구하는 사람들로부터 헌법을 위반하는 존재라는 규탄이 이어지는 바람에 ‘국군’이란 이름은 간신히 면하고 있다.




하지만 도쿄신문은 2006년 8월12일 해외파병이 이뤄지고 있는 자위대와 관련해 “육상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으로, 방위청의 육상 막료 간부가 이라크 부흥 지원 특별조치법 성립 후인 2003년 8월 파견 대원이 전투로 희생되었을 경우를 상정해 야스쿠니신사 합사가 가능한지를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자민당 의원인 우익 이나다 도모미도 “야스쿠니신사는 부전(不戰)을 맹세하는 곳이 아니며 ‘조국에 무슨 일이 있으면 뒤를 잇겠습니다’라고 맹세하는 곳이 아니면 안 된다.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은 역사인식에도, 정교 분리에도, 아시아 외교에도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전후 체제 속에서 앞으로도 나라놀이나 계속할지,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나라로 다시 태어날지의 문제이며, 여기에 논의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라놀이(자위대)’를 ‘진정한 나라(천황의 국군)’로 바꾸기 위해서는 야스쿠니신사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전쟁을 위한 최고의 무기는 병사를 독려하고 유족을 납득시키는 장치다. 야스쿠니신사에 의한 제신 현창은 새로운 전쟁, 새로운 전사자를 낳는 원인이 된다. 야스쿠니신사의 영새부에서 이름을 지우지 않으면 일본이 새로운 침략전쟁을 일으켰을 경우 침략신사·야스쿠니신사의 제신으로서 한국인 원고들의 아버지가 침략전쟁을 부추기는 ‘전의(戰意) 고양 무기’ ‘침략은폐 무기’가 되고 말 것이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1868~69년에 걸쳐 ‘보신 전쟁’이라 불리는 내전이 있었다. ‘천황 측’과 ‘쇼군(막부) 측’이 패권을 겨룬 전쟁이다. ‘천황 측’이 이겨 메이지 정부가 만들어지고 이긴 천황 측을 관군, 진 쇼군 측을 천황에게 칼날을 겨눈 적군이라고 불렀다. 당연히 관군 전사자는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고 적군 전사자는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하지 않았다. 적군의 땅인 아이즈 와카마쓰시를 관군인 하기 시장이 방문했을 당시의 모습이 전해진다. 1996년 아이즈 와카마쓰시에 하기 시장이 방문했을 때 아이즈 와카마쓰 시장은 하기시 측의 두 번에 걸친 화해 신청에도 전혀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즈 와카마쓰 시장은 “번은 무쓰(아오모리현)로 흐르게 되고 시신은 방치하는 메이지 신정부의 방식이 유감이다.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한을 호소하는 아이즈와 조슈뿐만 아니라 일본과 아시아도 같다”고 말해 끝까지 악수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내전도 130년으로는 간격을 메울 수 없다. 아이즈 와카마쓰 시장이 ‘일본과 아시아도 같다’고 한다면, 영새부 등의 이름 지우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더 필요할까. 2006년 이래 한국·대만·오키나와·일본 4개 지역 등의 시민연대에 의해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촛불 행동’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노(No) 합사, 노(No) 전쟁”의 목소리는 바다를 넘어 퍼져가고 있다.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과거의 문제로 인식할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문제로 받아들여 동아시아 민중과의 연대에 의해 야스쿠니의 어둠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 일본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야스쿠니신사 문제위원회



‘야스쿠니신사 국가수호 법안’이 제출되기 1년 전인 1967년 결성되었다. 그후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정교 분리와 관련된 문제 등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는 한편, ‘국립 추도시설 문제’ ‘야스쿠니신사·국립 추도시설’ ‘지도리가후치 문제’ ‘자민당 신헌법 초안 비판’ ‘천황제’ 문제에 관한 문답 형식의 팸플릿을 발행하고 있다. 특히 ‘야스쿠니신사·국립 추도시설’은 동북아시아의 연대를 위해 한·일·중·영어로 발행한다.



■ 야스쿠니신사 재판



2007년 2월26일, 아버지가 일본 군인·군속으로 강제동원돼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에서 전사·병사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는 유족 10명과 생존자 1명이 야스쿠니신사와 일본 국가를 상대로 제소했다. 살아 돌아왔음에도 전사했다며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고 있는 전 군속 1명은 무단합사 취소와 사죄, ‘1엔’의 위자료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는 전사자를 만들지 않는, 전사자의 현창도 허락하지 않는 “노(No)! 합사”가 일본과 한국을 잇는 공통 구호다.


 



■ 글쓴이 즈시 미노루는


일본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야스쿠니신사 문제위원회 위원장과 침례교연맹 야스쿠니신사 문제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야스쿠니신사 영새부에 기록되어 있는 한국인의 이름 말소청구소송(노합사 소송) 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야스쿠니의 어둠으로 초대합니다-야스쿠니신사·유취관 비공식가이드> <침략신사-야스쿠니 사상을 생각하기 위해> <평화는 무력으로 만들 수 없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