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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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장학사 손동우 기자 sdw@kyunghyang.com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예!” “황실의 존호(尊號)를 말해 보아라.” “황제폐하, 황후폐하, 대공전하, 차레비치전하….” 장학사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고, 선생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학사가 교실에서 나가자마자 마리는 선생님의 품에 뛰어들어 울음을 터뜨렸다. 1960년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퀴리 부인’의 한 대목이다. ‘마리 스클로도프스카’는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퀴리 부인의 결혼 전 이름이다. 마리가 학교를 다닐 무렵 조국 폴란드는 러시아의 혹독한 식민지배 아래 있었다. 어느날 러시아 장학사가 수업 참관차 학교에 와서 식민지 학생들의 ‘국가관’을 점검했고, 선생님은 가장 똑똑한 ..
(29) 미장원 윤민용 기자 vista@kyunghyang.com 볕 좋은 날이면 엄마는 마당에 의자를 내놓고 아들딸을 차례로 불러냈다. 보자기를 목에 둘러씌우고는 기다랗게 자란 머리칼을 가위로 슥삭슥삭 잘라냈다. 동네 어느 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미용기술을 배운 적 없는 엄마의 커트는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어서 한동안은 바가지머리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 당시 드라마 가 인기를 끌면서 적잖은 아이들이 바가지 머리를 하고 다녔지만 어린 마음에도 예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동안 엄마에게 불평을 했더니 효과가 있었나보다. 어느 날 엄마는 딸을 미장원에 데리고 갔다. 1982년 두발자율화 시대를 맞아 여고생들이 동네 미장원에서 자유로운 스타일로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물..
(5) 한반도서 첫 확인된 일본군 위안소 ㆍ논밭 복판에 유곽 풍해루·은월루… 전쟁 이전부터 ‘비명 소리’ 사오 나노코 (필명) 넓고 완만한 언덕에 푸른 논밭이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에 집들이 건성드뭇하다. 그런 반농반어(半農半漁) 마을 구석의 언덕 위에 그 건물은 덩그러니 서 있었다.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방진동. 북한이 ‘위안소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그 자리에는 일제시대에 지은 ‘위안소’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군 위안소로 이용된 은월루가 지금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으며, 현재는 마을 진료소로 사용되고 있다. | 사토 나오코 제공 두 군데 있었던 방진의 위안소는 각각 ‘풍해루(豊海樓)’와 ‘은월루(銀月樓)’라고 불렸다. 당시 경성 등 큰 도시에 많았던 ‘유곽’으로 흔한 이름이다. 주변에는 건물다운 건물이 없었다. 그러나 방진의 풍해..
(28) 라면 윤민용 기자 vista@kyunghyang.com 한밤중 출출할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아무리 유혹을 참고 버티려 해도 옆에서 누군가 먹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한 젓가락”을 연발하다 결국 찬밥까지 말아먹고 마는 마력의 음식, 바로 라면이다. 전 국민의 야식이자 간식으로, 더불어 밥을 대체하는 대용식으로 라면이 자리매김한 지 반세기가 다 된다. 본디 라면이라는 명칭은 중국에서 밀가루와 계란, 물을 반죽해 면을 뽑아 쇠고기 국물을 곁들인 라면(拉麵)에서 유래했다. 현대인들이 즐기는 인스턴트 라면의 효시는 1958년 일본의 닛신식품이 대량생산에 성공한 ‘치킨라멘’이다. ‘한 젓가락’의 유혹 앞에 버텨내는 장사는 없다. 라면은 이제 온 국민의 야식이자 간식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라면기계 2대를 ..
(5) 한국인 6명의 증언 ㆍ南에선 “애국청년단이 목숨 좌지우지, 좌익은 린치 당했다” ㆍ北에선 “수확의 절반이 地代 … 인민군에 특별헌납까지 했다” 번역·정리 | 정진국(미술평론가) [1950년 9월 말, 수복 직후에 튀렌은 서울에서 박선옥(Pak Sun Ok)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튀렌이 전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50년 10월,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로 나온 평양 시민들. 마흔일곱살의 박선옥은 시장에서 잡화상을 했었다. (…) 그렇지만 1945년 미군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박씨를 자극했다. 다른 한국인들에게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승만 정부는 일제협력자에 반대하는 법(반민특위법)을 공표했지만 경찰이나 군대에 남은 이들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박씨와 친구들에게 경찰은 악몽이었다. 즉, 경찰은 평화로운 시민들이 경..
(4) 중공군의 개입, 흥남철수 ㆍ성탄전야, 거대한 화형장처럼 불타는 흥남부두 ㆍ프랑스 종군기자가 본 6·25 번역·정리 | 정진국(미술평론가) 중공군 참전에 밀려 후퇴하는 유엔군이 혹한 속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앙리 드 튀렌은 한 보병사단의 운명을 따라, 38선을 되넘어 서울로 귀환했다.] 도로에 수많은 트럭과 지프 등 온갖 차량이 줄줄이 남행하고 있다. 후퇴다. 뺨은 얼어붙고, 장교들은 침통하다. 수심이 가득한 긴 난민행렬이 논밭을 가로질러 빠져나간다. 병사들은 창피해한다. 미군 고참 하사관은 이렇게 말한다. (…) “우리더러 성탄절에 집에 가 있을 거라고 (맥아더 장군이) 약속했잖아. 이걸 타고 있으면 그렇게 되겠구먼.” 병사들은 수없이 많은 중공군 이야기를, 장교들은 핵폭탄 이야기를 한다. 서울에 눈이 온다. “찌르레기들이 ..
(4) 위안부 피해 ‘국민기금’으로 치유될 수 있나 ㆍ‘국가배상 아닌 위로금’ 日정부, 자국민에 가해책임 떠넘겨 이성순 | 한국정신대연구소 소장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이 2007년 3월 말 12년간의 사업을 마치고 해산했다. 한국·대만·필리핀 3개 지역에서 피해자 285명에게 기금을 지급했다고 하지만, 기금의 지역별 지급상황이나 피해자 신상은 극비사항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텨 자세한 내용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1997년 1월15일 서울 중학동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김은례 할머니가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반대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외견상 한국·필리핀·대만·인도네시아·네덜란드 등의..
(27) 장난감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어린이날이 다가오면서 시장과 대형마트에는 장난감이 넘쳐난다. 평소 때보다 두서너 배 넓어진 매장에는 알록달록한 장난감들이 아이들의 정신을 빼놓고, 한편에서는 눈에 익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부모의 손을 잡아끌어 사고 싶은 장난감 앞에 선 아이들은 버티기에 들어간다. 부모들은 집에 수북이 쌓여 있는 다른 장난감들을 떠올리며 만만치 않은 가격표를 만지작댄다. 신경전을 눈치챈 아이가 이때를 놓칠 세라 뒤로 벌러덩 눕기라도 하면 ‘게임 끝’이다. 버릇 없다고 야단쳐보지만 ‘어린이날’인 것을 어쩌랴.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딱지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문제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매일이 어린이날 같다는 것이다. 장난감도 흔하다. TV 어린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