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

(82)
(35) 이발소 손동우 기자 sdw@kyunghyang.com 교과서나 대본소 만화 외에는 별다른 읽을거리 하나 없던 1960~70년대 보통 아이들이 ‘폭넓은 인문교양’을 접할 수 있는 장소는 엉뚱하게도 이발소였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상고머리’ ‘빡빡머리’ ‘니부가리’ 등 갖가지 형태의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깎으면서 극히 초보적인 형태나마 회화, 문학, 동양학 등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이발소의 인문학 교재는 이른바 ‘이발소 그림’이라고 불리운 모사복제화였다.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 줍는 사람들’은 어느 이발소에 가더라도 거의 예외없이 걸려 있었다. 우리 농촌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림 속의 풍경을 보면서 이발소 손님들은 자연스레 서양 회화에 접근할 수 있었다. 러시아 시인 알렉산데르 푸..
(7) 한국전쟁이 남긴 과제 - 한·미·중·일 학자 인터뷰 ㆍ“한반도 분단은 세계 문제… 북과 평화체제 구축을” 설원태 선임기자·조운찬 베이징 특파원 ·김진우 기자 한국전쟁은 지난 60년간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해왔다. 한국전쟁이 남긴 구조적 문제들이 지금도 우리 사회를 얽매고 옥죄고 있어서다. 경향신문은 ‘한국전쟁 60년-끝나지 않은 전쟁’ 기획을 통해 한국전쟁이 남긴 과제들을 되짚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해봤다. 시리즈 마지막으로 한·미·중·일 등 한국전쟁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국가에서 한국전쟁 문제에 천착해온 석학들에게 한국전쟁의 유산과 화해·평화의 해법을 물었다.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선즈화 중국 화동사범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를 직접 만나 한국전쟁의 성격과 원인에서부터 영향과 인..
(6)-2 [특별기고]평화체제 논의 우리가 주도를 송민순|전 외교부 장관 6·25 전쟁 발발 60년,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 전쟁 종식의 바람직한 방법은 통일일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위한 대내외적 환경이 조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상에 대해 남북은 물론 미국과 중국이 공감대를 만들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런 배경하에 2005년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 즉 한반도 문제의 잠정적 해결방식(Modus Vivendi)이라는 인식 아래 소위 ‘9·19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한반도의 비핵화, 관계정상화와 경제협력을 통한 북한의 국제사회 편입,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동북아 다자안보대화라는 중첩적 장치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공존 질서를 우선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 평화의 요건들을 ..
(6)-1 한국전쟁 어떻게 끝낼 것인가 ㆍ불안한 정전체제 ‘평화체제 전환’ 다시 논의해야 손제민기자 지난 5월20일 민·군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 발표 직전 정부 당국자들은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한 국제법 문서집의 세부조항들을 열심히 뒤적였다. 바로 정전협정이다. 천안함 조사결과에 따라 국제적으로 북한을 규탄하고 제재를 가하기 위해 법적 근거가 필요한데 정부는 그것이 정전협정 12항(적대행위 정지), 15항(한국 육지에 인접한 해면 존중)이라고 본 것이다. 이 조항을 발견한 당국자들은 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고 한다. 1953년 7월27일 북한·유엔·중국군 사이에 체결된 정전협정은 체결 직후부터 각측이 위반하는 일이 잦아 전체 63개 조항 중 군사분계선 위치를 표시한 몇 개 조항 외에는 사실상 효력을 잃은 휴지조각으로 여겨졌지만..
(5)-3 “땅 한 뼘 더 얻기 위해 목숨 바쳤다니…” ㆍ미 참전용사 존 맨리 ‘60년 만의 방한’ 손제민기자 “남북한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한국에 오지 않으려 했습니다. 동료들을 잃은 기억이 너무 아프게 남아 있고, 도대체 왜 싸워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욕에 사는 존 맨리(80)는 1952~53년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38선 곳곳에서 고지를 뺏고 빼앗는 전투가 벌어지던 52년 여름 인천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맨리가 배치된 곳은 경기도 임진강 서쪽의 ‘올드 볼디(Old Baldy)’라 불리는 ‘불모 고지’다. 그는 미 육군 2사단의 정찰병으로 중공군과 인민군의 동태를 감시하는 일을 했다. 어느 날 밤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참호가 무너지고 많은 동료들이 숨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봤다. “왜 멀리서 ..
(5)-2 “접경지, 분단과 경계 다차원 현실 이해를” ㆍ백령도 주민 정체성 연구 프랑스 줄레조 교수 손제민기자 “백령도와 같이 접경지대 주민들을 군사안보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일면적입니다. 가령 이들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주민들은 이중의 고통을 경험합니다. 군사적 위기감은 물론 꽃게잡이 산출량과 민박집 손님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경제적 희생을 입기 때문입니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43)는 정부·여당의 천안함 안보정국 조성에도 6·2 지방선거에서 인천·경기와 강원의 최전방 유권자들이 여당에 더 많은 표를 주지 않은 현상을 이해할 만한 일이라고 본다. 2004년부터 한반도 접경지역 주민들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백령도와 강원 철원에 들어가 지낸 경험이 있는 줄레조 교수는 “분단과 경계의 ..
(5)-1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ㆍ“아직도 ‘좋은 전쟁’ 믿음… 노근리서 전쟁 속성 깨달아야” 손제민기자 미국은 한국전쟁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해 많은 인명 손실을 겪은 나라다. 그 나라에서 한국전쟁은 종종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된다. 올해는 전쟁 60주년이라고 해서 미국 내에서도 한국전쟁을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제 여든 줄에 접어든 백발의 퇴역군인들이 자신이 참전했던 현장을 보려고 한국으로 오는 단체여행도 그중 하나다. 이달 초 한국을 찾은 수십명의 미군 참전군인들을 동행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온 미국의 AP통신 기자 찰스 핸리(63)는 “미국인과 한국인들은 한국전쟁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전쟁은 오늘의 미국 모습을 결정한 중요한 사건이다. 바로 그 전쟁 때문에 전 지구적으로 압도적인 군사대국 미국이..
(9) 사라져야 할 ‘야스쿠니의 어둠’ ㆍ멀쩡히 살아있는데 ‘영새부’ 이름 안지워 ‘살아있는 영령’ 즈시 미노루 | 일본 기독교교회협의회(NCC) 야스쿠니신사 문제위원회 위원장 ‘우미 유카바(바다에 가면)’라는 시가 있다. 749년 오토모노 야카모치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 나오는 시다. 1937년 일본 정부가 국민정신 강조주간을 제정했을 당시 NHK가 ‘국민가요’라는 이름 아래 이 시에 곡을 붙여 처음 방송했다. 노부토키 기요시라는 이가 작곡한 것을 테마곡으로 삼은 셈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 라디오로 부대 전멸소식 등을 전할 때 앞부분에 ‘우미 유카바’를 내보내 유명해진 노래다. 그렇게 군국주의의 대표곡이 탄생한다. 2006년 도쿄 촛불행동에서 참가자들이 도열해 ‘노 야스쿠니(YASUKUNI NO)’라는 글씨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