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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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의 끝나지 않은 전쟁 ㆍ북으로 간 혈육 … 평생을 괴롭힌 주홍글씨 ‘빨갱이’ 김진우·손제민 기자 이들에게 한국전쟁은 60년 전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의 삶에서 한국전쟁은 각종 통계상의 숫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60년 가까운 삶을 지배해온 고통이자 상처였고, 생각과 행동을 제약한 족쇄였다. 북으로 간 가족을 둔 ‘죄’ 때문에 평생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지내기도 했고, 세상에 대해 이유없는 분노를 터뜨리며 ‘상이군인’으로 지내기도 했다. 한국전쟁 후 60년간 ‘또 다른 전쟁’을 치러온 이들 3인의 삶이 말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 납북자 가족 최상동씨 의용군 징집된 아버지, 60년 동안 ‘고통의 그늘’ 중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혼자 쓸쓸히 돌아올 때였다. 앞서 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꼭 아버지 같았다. 한국..
끝나지 않은 전쟁 손제민기자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체결로 한국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못한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전쟁이 파생시킨 다양한 구조적 문제들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서다. 한국전쟁은 현대 한국을 규정하는 사회·경제·문화의 새로운 틀을 만들었다. 분단 고착, 한·미동맹과 전시작전권, 북한 핵, 반공주의와 냉전문화 등 현재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을 낳았다. 또 이산가족, 민간인 학살 유가족, 상이군인, 간첩, 혼혈아동, 양공주 등 ‘새로운 사람’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이 남긴 문제들을..
(33) 영화관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컴컴한 극장 안. 가슴이 콩닥거렸다. 청초한 모습의 강석우와 이미숙이 마침내 첫 키스를 하려는 참이다. 빨개진 귓불과 점점 커지는 심장박동 소리. 혹여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자라목처럼 잔뜩 움츠리고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 2초 전, 1초 전…. 실눈 뜨고 그 아슬아슬한 순간을 맛보려는데 “꺄악~, 엄마야” 옆에 앉아있던 친구 경희가 소리를 내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영문도 모른 채 함께 비명을 지르고 극장 안을 빠져나왔다. 친구는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의 이상한 행동(?)에 놀라 소리쳤다고 했다. “지지배, 1초만 늦게 소리지르면 안됐냐. 너 때문에 못 봤잖아!” 속상했다. ‘탈선’에 목말랐던 시절, 선생님의 철통 같은 수비를 뚫고 야간 자율학습에서 어떻게 ..
(8) 후지코시 여자근로정신대 끝나지 않은 싸움 ㆍ‘쇠 깎는 공장’ 끌려간 어린 딸들, 아직도 ‘뼈 깎는 고통’ 나카가와 미유키 | 호쿠리쿠연락회 도야마 사무국장 ‘도야마에 올 땐 기뻤네. 하룻밤 지새니 슬퍼지네. 언제쯤 이 공장을 떠날 수 있을까. 아~ 아~ 숨어서 우는 눈물아.’ 65년 전, 공장 인근의 다테야마(立山·일본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산)를 바라볼 때마다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소녀들이 있었다. 일본 도야마의 군수공장인 후지코시에 ‘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 연행당한 한국인 소녀들이다. 그 피해자들은 지금 한국인 강제연행 소송의 마지막인 ‘후지코시 소송’에서 싸우고 있다.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녀들이 선반으로 쇠를 깎는 중노동을 하고 있다. | 나카가와 미유키 제공 기계공구 제조사인 후지코시는 1928년 도야마 시에서 창업했다. ..
(32) 미니스커트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신세계백화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한 가장 짧은 스커트 길이는 23㎝, 성인 남성 손바닥 한 뼘 정도였다. 올 여름도 미니스커트가 대세다. 젊은 여성을 위한 브랜드의 경우, 스커트 중 미니스커트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요즘 40대 여성들까지 과감히 허벅지를 드러내자 젊은 여성들의 스커트는 더욱 짧아지고 있다. 초미니, 마이크로미니를 지나 이젠 10억분의 1에 해당하는 과학용어를 빌린 ‘나노(nano) 미니’까지 등장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활보하는 여성들을 보고 어르신들이 “아니, 왜 아랫도리는 벗고 다니는 거여?”라고 놀랄 만도 하다. 1970년대 한 경찰관이 미니스커트를 단속하기 위해 젊은 여성의 치마 길이를 자로 재고 있다. 패션..
(7)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ㆍ日권력자들, 천재지변 공포 속 조선인을 정국수습 도구로 ㆍ재일한국인 6000여명 유언비어로 ‘불령선인’ 낙인, 日 자경단 등에 처참히 살해 김종수 | 1923간토시민연대 한국상임대표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학살사건’에 대한 한·일·재일 시민의 네 번째 공동현장연구가 시작되던 2009년 8월11일 새벽이었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곤히 잠든 연구단원들을 깨운 것은 지진이었다. 몇 차례 호텔을 심하게 흔들어놓자 연구단원들은 사색이 되어 아연 긴장된 얼굴로 아침을 맞이했다. 1923년 9월의 첫날에 일어난 지진 공포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도쿄로부터 불어오는 뜨거운 도시 바람이 몰려 한낮의 최고기온이 섭씨 40도를 웃돈다는 사이타마현의 기온이 전날 쏟아진 소나기로 예상..
(31) 청량음료 김민아 기자 makim@kyunghyang.com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윤형주씨가 만든 ‘오란씨’ CM송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CM송계를 풍미한 ‘불후의 걸작’이다. 요즘 이 노래가 20년 만에 다시 전파를 타고 있다. 동아오츠카가 ‘비타민C 탄산음료’라는 오란씨 신제품의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TV 광고를 재개했기 때문이다. 광고는 양 갈래로 머리 땋고 교복 입은 여학생의 모습에서 시작해 깜찍한 미니스커트 차림에 부츠를 신은 소녀의 모습으로 끝난다. 복고풍에서 최신 트렌드까지 망라한 셈이다. 1980년 한 잡지에 게재된 오란씨 광고. 왼쪽 위편의 오란씨 CM송 악보가 눈길을 끈다. 한국에서 청량음료가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한 것은 1..
(6) B·C급 전범과 시베리아 억류자의 한 ㆍ강제징용된 조선 청년들, 일제 희생양으로 ‘전범의 굴레’ 아리미쓰 겐 | 전후보상네트워크 대표 시베리아 억류자 문제가 한국 독자들에게는 익숙지 않을지 모르겠다. 1945년 이후까지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의 침략전쟁을 대신 짊어지는 희생을 강요당했다. 강제징용 뒤 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으로 끌려가 포로감시원으로 일하며, ‘한국 간수(Korean Guard)’라고 불린 이들은 한반도에서 동원된 조선 청년들이었다. 일본 식민지였던 대만에서도 청년들이 부족한 전투요원을 메우기 위해 포로감시원으로 징집됐다.일본은 태평양전쟁 초기의 승리로 미국·영국·호주·네덜란드 등 많은 연합군 포로를 붙잡았으나 포로 처우에 관한 아무런 체제나 방법이 없었다. 포로 처우에 관한 국제인도법(제네바 조약)에 관해 일본군 병사나 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