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역사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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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치유 안된 기억, 미래를 위한 기록 ㆍ일 정부 피해회복 요구 거부 여전…과거사 재정립·대안 모색 계기로 김학순 대기자 100년 전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불법적으로 강제한 한반도 식민지배는 영원히 지울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은 상흔을 남겨놓았다. 그 후유증도 완치가 불가능할 정도로 광대하다. 일본 제국과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강요당한 무수한 조선 민중. 반인도적 전쟁범죄의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여성. 어린 나이에 사기와 협박에 의해 끌려간 여자근로정신대원. 참전을 강요당한 뒤 BC급 전범 판결을 받아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포로감시원. 군인으로 끌려갔다가 태평양 전쟁 이후 버려진 시베리아 억류자. 강제징용 등으로 동원됐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할린 미귀환자. 탄광·비행장·철도공사장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어간 노동자. 관동대지진 당..
(1)-1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었는가 ㆍ日정부, 한일협정 내세워 “모든 청구권은 끝났다” ㆍ경향신문 · 국치100년사업공동추진위원회 공동기획 김민철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집행위원장 2009년 10월29일 재한 군인·군속 항소심 판결을 앞둔 도쿄고등재판소 재판정. 야스쿠니신사 합사 문제를 포함해 식민지배하의 강제동원 피해 문제 전체를 아우르는 소송이자 최대 규모의 원고가 참여한 소송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렸다. 일본에서 상대적으로 한·일간 과거청산 문제에 의지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뒤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재판정은 한껏 주목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듯 재판장은 일본 TV 카메라의 법정 스케치를 허용했다. 짧지만 무거운 긴장이 흐른 뒤 판사는 “본건 공소를 모두 기각한다. 공소비용은 공소인들이 부담한다”라는 두 ..
(24) 우량아 선발대회 김민아 기자 makim@kyunghyang.com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종교는 ‘S라인’과 ‘초콜릿 복근’이다. 늘씬한 몸매에 대한 선망은 어린아이들까지 다이어트로 몰아넣고 있다. 뚱뚱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왕따 되기 십상이란다. 소아비만은 성인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와 부모들의 불안을 키운다. 30년 전, 아들 딸의 우량아 선발대회 입상을 노리던 부모들은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을 터. ‘작게 낳아 크게 기르겠다’며 열심히 운동하는 임신부 며느리, ‘살과의 전쟁’을 벌이는 손자 손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는 1971년 문화방송과 남양유업 주최로 처음 열렸다. 83년까지 계속된 이 대회는 해마다 어린이날을 앞둔 4월 이맘때 시도별 예선을 ..
(23) 월급봉투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요즘 최고의 안정적인 직업으로 선망받는 공무원. 1975년도 공무원의 월급은 얼마나 됐을까. 당시 경상북도 문경군청 소속 4급 을류(현재 7급 해당) 공무원으로 일했던 김병옥씨가 최근 ‘문경인터넷뉴스’에 공개한 봉급 명세서를 보면 본봉 3만690원, 수당 8500원, 여비 1만1870원, 일·숙직비 400원(계 5만1460원)에, 공제내역은 기여금 1688원, 대한교육 900원, 제일생명보험 700원, 이동조합 2346원, 직장금고 100원, 신문대금 1150원, 전별금 500원, 축의금 300원(계 7884원)으로 기록돼 있다. 실제 수령액은 4만3576원. 35년 전이긴 하나 5만원이 못되는 돈으로 저축도 하고 술도 마시며 살았다. ‘박봉’이라도 ..
(22) 아침 조회 윤성노 기자 ysn04@kyunghyang.com 일요일을 쉰 터라 친구가 보고 싶지만 아침 조회만 생각하면 꾀병이 났다. 학습시간표에 엄연히 월요일 1교시는 조회 시간이다. 조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지각이고, 결국 개근상을 받을 수 없다. 성실성이 기본 덕목이던 1960~70년대엔 우등상보다 개근상을 더 쳐줬다. 부모가 먼저 나서 ‘아파도 학교에 가서 죽으라’고 할 때였다. 제 몸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국민이 되게 하는 게 교육이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라고 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1972년 제정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단행한 해다. 2007년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
(21) 구멍가게 김희연 기자 egghee@kyunghyang.com “평생 계속할 것 같던 구멍가게의 문을 닫던 날, 우리 식구 중 한 명도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가족의 삶을 어떤 때는 질퍽하게, 또 어떤 때는 차지게 만들어 주었던 구멍가게…. 힘들고 고단했지만 부모님의 땀과 정성, 그리고 우리 오남매의 유년과 추억이 한데 어우러진 행복한 보금자리였다.” 작가 정근표씨는 구멍가게 집 둘째아들이었다. 그는 구멍가게를 배경으로 자신의 유년시절을 기록한 ‘구멍가게’를 펴냈다. 책이 나오자마자 그는 구멍가게 주인이었던, 지금은 팔순이 다 된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보여드렸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책장을 넘겨보기는커녕 아예 집에 두지도 말라고 했다. 새벽녘부터 자정이 넘도록 일에 치여 고생한 아내와 풍..
(20) 강남 아파트 김민아 기자 makim@kyunghyang.com “강남은 그때는 시골이죠. 솔직히, 벌판이었어요. 누이동생이 와가지고 막 울더라고요. 오빠가 어떻게 돼서 이런 데 사느냐고. 시골 갔다 오면 버스에서 내려 소변 보던 데예요. 화장실이 없으니까. 그때는 강남도 아주 형편없었죠.” 최근 출간된 이라는 책에서 홍순하씨(1932년 종로구 청진동 출생)는 이렇게 회고한다. 여든 가까운 어르신의 추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비슷한 기억이 있다. 서대문구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다. 조금 과장하면, 하룻밤을 자고 나면 급우 한두 명씩이 전학을 갔다. 주로, 부촌으로 손꼽히던 연희동의 마당 넓은 단독주택에 살던 친구들이었다. 이들의 행선지는 대부분 압구정동과 반포동, 서초동의 아파트였다. 울며 떠나간 친구들 가운데는..
(19) 버스 차장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서울시는 지난해 3월17일부터 10일간 ‘해피 버스 데이(Happy Bus Day)’란 캠페인을 벌였다. 경기침체로 고통을 겪는 시민들을 위로하고 즐거움을 주기 위해 151번 버스에 안내양을 배치해 친절 서비스를 보이는 이벤트였다. 젊은이들은 신기한 눈빛을 보냈지만 과거의 버스 안내양, 아니 ‘뻐스 차장’을 기억하는 중장년층들은 가슴 한쪽이 뜨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1970~80년대 우리가 만난 버스 차장은 ‘해피’한 직장여성이 아니라 하루하루 고단한 삶과 싸우는 슬픈 눈빛의 생활전사였기 때문이다. 충남 태안군의 버스에서 차장이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태안군은 관광 홍보와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를 위해 2006년 차장(안내양) 제도를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