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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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가야의 별자리 지도 1999년 7월4일 독일 작센안할트주 네브라에서 2차대전 때 숨겨놓은 보물을 찾던 도굴꾼 둘이 야산을 탐사하던 중 이상한 원반 하나를 주웠다. 직경 30㎝ 무게 2.2㎏의 청동제 원반에서 녹을 제거하자 금으로 된 태양과 보름달, 초승달, 그리고 별 문양이 드러났다. 도굴꾼들과 3년에 걸친 숨바꼭질 끝에 독일 경찰은 스위스 접경지역에서 이 유물을 확보했다. 20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발견이라는 네브라 하늘 원반(Nebra sky disc)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원반에 담긴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우선 제작시기가 기원전 16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선사시대인 3600년 전 물건이라는 주장에 위조논란이 일었지만, 함께 발견된 청동검에 붙은 자작나무 껍질의 동위원소 측정 결과 진품으로 판명됐다. ..
[여적]독립유공자 가네코 후미코 1926년 3월25일 두 남녀가 일왕 암살을 꾀한 ‘대역죄’ 혐의로 일본의 법정에 섰다. 남자는 조선 예복에 사모관대 차림을 하고, 여자는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이들은 “우리는 조선인이므로, 재판도 조선말로 할 것이니 통역을 허락하라”고 요구했다. 재판장은 두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 순간 여자는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남자는 “재판은 비열한 연극이다”라고 외쳤다. 법정에 선 남녀는 박열·가네코 후미코 부부였다. 둘은 도쿄에서 만났다. 아나키즘에 깊이 공감하며 비밀결사 ‘불령사’를 조직하고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에 저항했다.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때 두 사람은 체포됐다. 이듬해 심문과정에서 폭탄입수 계획이 드러나면서 둘 다 일왕 암살을 꾀한 대역죄로 재판에 회부됐다. 가네코는 무기징역..
[편집국에서]‘상주본’도 소장자도 양지에서 맘 편히 살았으면… “적은 돈도 몰래 숨겨놓으면 신경 쓰이는데 상주본을 보관하느라 상상도 못할 스트레스를 겪고 있습니다.” “화재로 책이 훼손돼 좌절하기도 했어요.” “소중한 유산을 공개한 뒤 양지로 나와 맘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소장하고 계신 배 선생님! 얼마나 힘드십니까. 오죽하면 지난 1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훈민정음 상주본 이대론 안된다’란 주제의 토론회에 나와 이렇게 토로했을까 싶습니다. ‘훈민정음 상주본’은 어찌 보면 참 가벼운 책입니다. 한지 30여장을 엮어 겨우 60여쪽에 불과하니. 그런데도 선생님의 어깨를 머리를 온몸을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가 짓누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밤잠을 쉽게 이루지 못할 정도로 무겁지 않습니까. 조금은 이해할 듯도 합니다. 불길에 넣으면 한순간..
[경향의 눈]연암 박지원과 국립한국문학관 여러 달째 를 읽고 있다. 시작은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의 열하일기 강좌와 답사를 기획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강좌와 답사가 끝났으니, 지금쯤은 책을 놓았어야 맞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방에 들어 있다. 게으른 독서 때문만은 아니다. 목적을 위한 독서에서 즐기는 독서로 바뀐 것이다. 흔치 않은 읽기 경험이다. 앞서 을 읽으면서 연암 박지원의 문장에 눈을 떴다. 그의 단편산문과 한문소설이 연암의 재치와 유머, 사물에 대한 착안점을 보여준다면, 는 연암의 글쓰기 방식, 사회인식, 세계관을 펼쳐낸다. 는 연암 문학의 정수가 담긴 장편 산문이다. 아니 ‘대하 산문’이다. 갖가지 사건과 생각, 이야기가 장강처럼 굽이친다. 연암에게 글쓰기는 진부함을 털어내는 작업이다. 그는 ‘따라하기’를 싫어했다. 그의 글쓰기 ..
역사 소비 시대 작가 이병주는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고 말했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도 했다. 역사의 가치와 존재감을 이처럼 명쾌하게 보여주는 말은 없을 듯하다. 과거 동양에서 새로운 왕조는 반드시 이전 왕조의 역사를 정리했다. 중국에서 24사를 편찬한 전통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고려 때 를 편찬하고, 조선에서 를 간행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역사만큼 인간의 삶과 세상사를 정리된 형태로 보여주는 분야는 없다. 역사를 구성하는 인물, 사건은 스토리가 넘친다. 매혹적인 역사는 그것을 쓰고 정리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날 너나 할 것 없이 이곳저곳에서 역사를 쏟아내는 이유다. 조선왕조실록 등 다양한 사료의 번역과 보급은 대중역사가의 출현을 부추기고..
[여적]고조선 문명 고조선은 한국 최초의 국가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의 기점을 놓고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일연은 에서 와 를 인용해 단군왕검이 요 임금 시절에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썼다. 일연의 기록은 단기(檀紀)와 개천절 제정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단군조선을 신화로 규정한다. 역사 발전 단계상 그 시기에 국가가 형성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요 임금이 전설상의 인물인 데다 도 전하지 않은 문헌이라는 점도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국사학계는 고조선의 시작을 기원전 8~7세기 이후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단군조선 실재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제강점기 김교헌 등 대종교 계열 학자들은 등을 통해 단군시대를 역사로 규정했다. 오늘날 재야학자들은 등을 근거로 단군을 역사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단군조선..
[경향의 눈]건국 1100년, 재평가해야 할 통일왕조 고려 1316년 7월26일, 익재 이제현은 북경을 출발해 사천성 아미산으로 향했다. 원나라 황제의 명을 받아 아미산에 향을 올리러 간 것이다. 에는 그때 여정이 나와 있다. “길은 조나라(하북성), 위나라(산서성), 주나라(하남성), 진나라(섬서성) 땅을 지났다. 기산(岐山)의 남쪽에 다다라 대산관(大散關)을 넘어 포성역을 지나 잔도에 올라 검문(劍門)으로 들어 성도(成都)에 도착했다. 다시 배로 7일을 가서야 아미산에 이르렀다.” 아미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연말이 되어서야 북경으로 돌아왔다. 여행 기간은 약 5개월, 여정은 왕복 5000㎞에 달했다. 익재 나이 스물아홉 때의 일이다. 3년 뒤의 여행지는 절강성 보타산이었다. 1319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익재는 상왕 충선왕을 모시고 천진~양주~진..
[기고]가야문화 복원 첫 과제는 ‘가야’ 어원 찾기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인 ‘가야사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경남·경북·전북·부산 등 가야 문화권 4개 광역지자체는 총 2조9376억원을 들여 415건의 가야사 복원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필자는 가야 문화 복원의 첫 과제는 ‘가야(伽倻·GAYA)’라는 말의 어원과 그 배경을 밝히는 데 있다고 본다. 이는 가야 문화의 정신과 올바른 역사를 알아내는 요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30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동국대 세계불교연구소가 주관한 ‘가야사와 가야불교의 재조명’이란 주제의 학술발표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는 가야 연구의 유일한 역사기록인 의 첫머리 ‘가락국기’를 토대로 ‘가야’의 국명에 대한 시원과 유래를 밝혔다. 그에 따르면 가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