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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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 이우환…10여년 뒤 “모작? 내 그림은 내가 안다” 그림인데 그림 같지 않다. 텅 빈 공간에 두어개 점이 그림의 전부인가 하면, 점으로 모여진 선이 바람에 날리듯 화폭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점과 선의 조화로 형상이 없는 사유의 세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모노크롬(단색조) 화가인 이우환의 그림이다. 경향신문은 1994년 9월1일자 13면에 국제화단에서 주목받는 이우환의 전시회를 소개했다. 그의 작품은 쉽지 않다. 이를 아는지 그는 “언뜻 보았을 때 생소할 수 있다.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없고 휑뎅그렁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혼신을 다해 완성한 작품세계를 처음 접한 사람이 알아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다만 ‘뭔가 새로운 울림이 있더라’는 느낌만 가져가면 만족한다고..
현정은, ‘재계의 여장부’ 또는 ‘실패한 초보 경영인’ “정주영 대표의 집안에는 유별나게 남자가 많다. 정 대표는 8남1녀를 두었는데 모두 회장 아니면 사장이다. … 5남 몽헌씨는 현대전자 회장을 맡고 있다. … 다섯째 며느리 현정은씨는 현대상선 회장 현영원씨의 딸로 이화여대 출신이다. 현정은씨의 모친 김문희씨는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자의 외동딸이다.” 경향신문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후보 연구’ 시리즈를 게재했다. 그해 9월4일자 4면에는 당시 김영삼 민주자유당 총재, 김대중 민주당 대표 등과 함께 대선에 출마한 정주영 통일국민당 대표의 가족과 친·인척을 소개하는 기사(사진)가 실렸다. 신문에는 정주영 대표와 부인 변중석 여사가 여섯 며느리와 함께 찍은 사진도 게재됐다. 남편 정몽헌 회장과 결혼한 이후 집안 살림만 하던 현정은 현대그..
짧은 잔치 긴 가난…‘구호대상’이 된 최영미 1990년대 시가 죽었다고 아우성이던 시절, 최영미(55)의 첫 시집 가 세상에 나왔다. 1994년 3월이다. 무모함과 당돌함, 새로움이 주는 파격에 독자들이 열광했다. 여기에 명문대 출신, 학생운동 전력, 젊은 여성시인 등 문학 외적 이미지까지 겹치면서 ‘최영미 현상’이라 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최영미는 1980년 서울대 인문대에 입학해 운동권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졸업 후에는 번역에도 참여했다. 그는 한때 전두환 전 대통령 아들 재국씨가 운영하는 시공사에서 8개월 남짓 밥벌이를 했다. 그때 쓴 시로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했다. 1994년 9월16일자 경향신문은 ‘황금알’을 낳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의 김진명, 이이화, 유홍준, 공지영 등이 독서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1994..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박정희와 새마을운동의 팬 박근혜 대통령은 아프리카를 순방하고 있다. 5월28일 우간다 캄팔라에서 박 대통령을 반긴 이는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다. 그는 32년 동안 우간다를 통치하고 있다. 무세베니는 경향신문 1985년 7월27일자 외신면에 처음 등장했다. ‘전 국방장관 요웨리 무세베니가 이끄는 우간다 반군들이 수도 캄팔라에서 240㎞ 떨어진 카세세 지역의 포트 포르탈시를 점령한 후 이곳을 사실상 봉쇄함으로써 우간다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캄팔라 주재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해 국영 라디오가 보도했다.’ 무세베니는 1944년 우간다 남서부 은툰가모에서 소몰이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탄자니아로 유학가서 다르 에스 살람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1971년 쿠데타로 이디 아민이 집권하자 무세베니는 밀턴 오보테 세..
[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좌충우돌 트럼프, 고장난 브레이크 좌충우돌 떠벌이가 큰일을 냈다. ‘천하의 바람둥이’이자 ‘막말 제조기’로 통하는 미국의 부동산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가 사실상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다. 지난해 6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바람을 일으키더니 돌풍을 넘어 태풍이 됐다. 트럼프는 미국에서조차 요행과 투기로 성공한 사업가 취급을 받는다. 그의 아버지(프레드 트럼프)는 자수성가해 뉴욕에 2만4000가구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건설업자였다. 트럼프는 아버지에게서 부동산 사업을 배웠다. 일이 점점 따분해지면서 그는 몇 달러의 세를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니 부자들에게 콘도 하나를 파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1976년부터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 땅을 사들여 시설투자를 해서 이윤을 뽑아내는 방식이었다.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
투혼의 필리버스터’ 은수미, ‘지못미 의원’이 되다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53)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노태우 정권 때인 1992년이다. 그해 5월 국가안전기획부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공안정국 조성에 혈안이 됐던 안기부는 “사노맹은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려 했던 남로당 이후 최대 지하조직”이라고 했다. 언론은 안기부 발표를 여과 없이 받아 썼고, 구속자 명단을 게재했다. ‘은수미(29·서울대 사회학과 3년 제적).’ 사노맹에서 정책국장을 맡았던 그의 이름 석자가 신문에 실렸다. 안기부가 발표한 수사결과와는 달리 사노맹은 군사정권 타도, 유럽식 사민주의 건설, 진보적 노동자 정당 설립 등을 목표로 1989년 11월 결성된 조직이다. 사노맹 활동을 하기 전 은 위원은 서울 구로공단 봉제공장에 1년6개월간 위장취업했..
아흔 살 송해, ‘딴따라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12.7%. 지난 1일 방영된 KBS 시청률이다.(닐슨 코리아 집계) 아이돌 가수들이 출연하는 공중파 3사의 대표적 음악프로들이 1~2%대의 ‘애국가 시청률’에 머무는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차이다. 음악을 소비하는 환경이 인터넷과 모바일 중심으로 바뀐 걸 감안해도 대단한 인기다. 매주 일요일 오후 12시10분 은 어김없이 ‘빰빠라’를 울린다. 촌스러운 무대에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바탕 난장을 벌인다. 그 중심에 아흔 살 송해가 있다. 그는 “영리한 사람이 망가질 수 있다”며 나이도 권위도 다 벗어던지고 사람들과 어울린다.(경향신문 1996년 7월20일자·사진) 출연자는 물론이고 객석과 시청자들은 탈권위의 희열을 느낀다. 오민석 단국대 교수는 이를 송해가 만드는 ‘횡단의 쾌락’이라고 ..
‘소수의 대변자’ 하승수, 녹색정치 ‘씨앗’ 뿌리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48)은 다수보다는 소수, 가진 자보다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 왔다. 다수를 이기는 ‘소수의 힘’을 믿어온 그가 지켜온 삶의 원칙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과 낙관을 잃지 않으며, 비폭력과 평화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꿀 것”이란 녹색당 강령과 닮았다. 그는 대구에서 나서 부산에서 자랐다. 고교 시절 공부 말고는 다른 것에 곁눈질하지 않던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해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모순에 눈떴다. 그렇다고 이념에 매몰된 ‘골수 운동권’은 아니었다. 그는 24살 때인 1992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땄고, 3년 뒤에는 사법시험에도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잡지를 만드는 편집부에 들어가 취재차 들른 참여연대에서 당시 박원순 사무처장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인생행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