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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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 김부겸의 세 번째 대구 도전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59)이 4·13 총선 길목에 새누리당 김문수 전 경기지사(64)에게 띄운 공개편지의 한 구절이다. 경북고·서울대 선후배로, 학생운동(김부겸)과 노동운동(김문수)에 투신해 40년 가까이 얼굴 트고 살다 대구 수성갑에서 맞닥뜨린 ‘얄궂은 운명’을 빗댄 것이다. 학창 시절 교회모임에서 만난 두 사람은 1980년대 서울대 앞에 사회과학서점을 열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신림4거리에서 ‘백두서점’을, 김 전 지사는 봉천4거리에서 ‘대학서점’을 운영했다. 대중정당 문턱을 차례로 넘고 잠룡으로 마주 선 외나무다리. 김 전 의원은 중선거구제로 치른 12대 총선(유성환·신도환) 후 31년 만에 대구에 도전하는 야당 정치인의 짐과 승부를 “가혹한 일”이라며 가벼이 보지 않았다. 자청한 일이다..
1등 새누리당’ 세일즈 나선 ‘국수’ 조훈현 1989년 9월7일 경향신문 4면엔 두 명의 세계 정상이 개선하는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한 명은 세계레슬링선수권에서 23년 만에 금메달을 딴 김종신이고, 다른 한 명은 제1회 잉창치(應昌期)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조훈현 9단이었다. 조훈현은 김포공항에서 관철동 한국기원까지 바둑계 최초로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제왕’의 기쁨을 만끽했다. 잉창치배 우승은 조훈현에게 특별했다. 만 10세에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문하에 들어가 꿈을 키우던 조훈현은 1972년 병역 문제로 귀국한 뒤 1974년 최고위 우승을 시작으로 거침없이 반상을 점령했다. 숱한 신예들이 ‘조훈현 타도’를 외쳤으나 누구도 그를 넘지는 못했다. ‘영원한 2인자’ 서봉수의 비수에 간간이 피를 흘리긴 했지만 그의 독주는 멈추지 않..
섬과 바다를 노래한 ‘걸어다니는 물고기’ 이생진 윤동주는 하늘을 보고 별을 노래했다. 그는 바다를 보고 섬을 노래했다. 윤동주는 젊은 시절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그는 나이 40이 되어서야 등단을 했다. 이생진은 섬의 시인이다. 섬사람들은 섬에서 미역을 캤고 그는 시를 캤다. 그는 갯내 나는 충남 서산에서 나고 자랐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에 이끌려 섬을 찾아다녔다. 그는 해방 직후인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섬 순례를 시작했다. 안면도가 첫 순례지였다. 거의 혼자 떠났다. 서울 보성중학교 교사로 있으면서도 방학만 되면 등짐을 꾸렸다. “해마다 여름이면 시집과 화첩을 들고 섬으로 돌아다녔다. 안면도 황도 덕적도 용유도 울릉도 완도 신지도 고금도 비금도 진도 흑산도 거제도 제주도 쑥섬 거문도….” 그는 자유롭게 섬에 가기 위해 1993년 ..
‘경제통’ 이한구, ‘공천 피바람’을 부르다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71)이 정계에 진출하기 전까지 가장 오랫동안 몸담았던 곳은 대우경제연구소였다. 경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1969년 행정고시(7회)에 합격한 그는 재무부에서 근무하다 1984년 대우그룹으로 옮겼다. 당시 회장실 상무로 일하던 그는 김우중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룹사 브리핑, 국내외 공장 시찰 등 김 회장의 동선(動線)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써나가던 김 회장의 ‘세계경영’ 전략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3년간 ‘그림자 보좌’를 한 그에게 김 회장은 “제조업 계열사 책임자로 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대우경제연구소로 보내달라”고 했다. 사진 크게보기 대우경제연구소는 1984년 설립된 국내 ..
이해찬, 민청학련 명단서 공천배제 명단으로 경향신문 1975년 2월17일자 7면에는 대전교도소에서 석방된 이들 14명의 명단이 나온다. ‘구창완(서울대 문리대) 임성균(서강대) 윤한봉(전남대 농대 4년) 강구철(서울대 문리대 정치과 3년) 류갑종(전 통일당 소속 국회의원) 방인철(중앙일보 기자) 권오성(서강대) 이해찬(서울대) 이상우(연세대)…’. 1972년 10월 유신과 이듬해 8월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박정희 정권에 대한 국민 저항이 거세졌다. 박정희 정권은 4월3일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해 학생들의 수업거부 등 집단행동을 금지했다.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중심으로 하는 유신반대 투쟁 배후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한다. 중앙정보부는 긴급조치 4호와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240명을 체포했다. 인혁당 관련자 여정남 등 8명은 19..
아파트 주민 대표가 된 ‘애마부인’ 배우 김부선씨(55)가 난방비 비리를 폭로한 서울 옥수동 ㅎ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됐다. 단독출마해 얻은 찬성표는 88표(59%). “한겨울에도 ‘난방비 0원’인 집이 수두룩하다”면서 2012년 홀로 전단지를 뿌리며 시작한 싸움도 새 국면을 맞았다. 주민들과 얼굴 붉히고, 서류뭉치 내놓으라고 관리소장과 실랑이하며 경찰서·구청 문턱을 숱하게 넘었던 4년. 그는 시민들의 응원 속에 국회 국정감사장에 섰고, 전국 아파트 난방비 전수조사를 이끌어냈다. 올해부터 300가구 이상 아파트단지의 외부회계감사를 의무화시킨 발화점도 그였다. 그렇게 이름 붙여진 ‘난방열사’가 회계장부 열람권도 쥔 주민 대표가 된 것이다. ㅎ아파트엔 지난 1월 그가 제기한 ‘텃밭 조성비’ 의혹도 물려 있다. 구청에서 지원받아 아파트..
돈 걱정 모르던 하일성 ‘인생 몰라요’ 1983년 8월 말 한·일 고교야구대회가 일본에서 열렸다. 라디오 생중계를 하던 해설자는 ‘적지에서 잘 싸우고 있는 선수들’의 이름을 불러대며 초반부터 신이 났다. 10분쯤 지났을까. “아니, 미쳤어? 지금 뭐하는 거야. 한국과 일본이 뒤바뀌었잖아.” 국제전화가 빗발쳤다. 중계석이 경기장과 너무 떨어진 탓이 컸지만 한·일 선수를 혼동하다니 ‘대형사고’였다. 해설자는 ‘하구라’ 하일성이었다. 천만다행으로 한국 팀이 이겨준 덕에 시말서 한 장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그는 훗날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 암담했다”고 그날을 회고했다. (경향신문 1997년 5월6일자) 고교 체육교사였던 하일성은 1979년 동양방송(TBC) 야구해설위원으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프로야구 원년인 ..
[경향으로 보는 ‘그때 그 사람’]거짓말같이 떠난 영웅본색의 사나이 2003년 4월1일 만우절에 거짓말 같은 뉴스가 전파를 탔다. 홍콩을 대표하던 미남 배우 장국영의 사망 소식이었다. 터무니없었기에 방송국의 만우절 이벤트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는 홍콩의 한 호텔 24층에서 몸을 던져 하늘나라로 떠났다. 죽음의 미스터리를 두고 음모론이 나왔고 ‘베르테르형 모방자살’이 이어지기도 했다. 경향신문 1995년 11월22일자 34면에는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이 출연한 의 영화해설 기사가 실렸다. 장국영은 홍콩 누아르의 진출과 함께 한국에 이름을 알렸다. 주윤발·적룡·장국영이 출연한 (1986년)은 뒷골목 영화 신드롬을 일으켰고 주인공들은 지금의 한류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영화에 매료된 사내들은 장국영의 앞가르마(드라마 에 등장한 동룡의 헤어스타일)를 따라 했고, 주윤발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