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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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와 유관순의 서훈등급 “(내시·마부 같은) 천것들과 같이 공신반열에 오르니 어찌 후세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는가.”() 1604년(선조 37년) 임진왜란의 공신책록 사실을 기록한 사관이 장탄식한다. 곽재우·정인홍·김면·김천일·고경명·조헌 같은 의병장들은 빠지고 깜냥도 안되는 자들이 대거 공신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왜적을 무찌른 선무공신은 이순신·원균·권율·김시민 등 18명에 불과하고, 선조를 의주까지 수행한 내시(24명)·마부(6명) 등을 포함한 86명이 호성공신(사진)에 올랐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물론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 명공대신보다 끝까지 임금을 수행한 최측근들에게 상급을 내린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한 ‘의리지키기’ 차원이 아니었다. 선조는 임진왜란 ‘승전’의 요인을 ‘조선의 강산을 다시 만..
출산 중 사망한 모자 미라 “이상한데….” 2002년 9월 경기 파주시 파평 윤씨 문중 묘소에서 발굴된 여성 미라(사진)의 상태를 육안 관찰하던 고려대 의대 김한겸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라의 복부 부분이 심하게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혹 암덩어리 아닐까.’ 그렇다면 수백년 전 암으로 사망한 여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검사해보니 미라의 배 안에서 만삭 크기의 남자 태아가 보였다. 미라의 외음부를 살짝 열어보니 태아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태아의 머리가 산도(질)에 진입한 상태였다. 자궁벽에 3×4㎝의 별 모양 파열흔적이 선명했다. 연구팀이 장탄식했다. “아뿔싸! 산모가 5분만 버텼어도….” 미라의 옷고름 글씨(병인윤시월)를 역산해보면 여인은 1566년 윤10월에 사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금만 버텼어도 사내를 ..
아키히토, 고려신사, 내선일체 “일본 왕실에 한국계 피가 흐른다”고 고백했던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최근 고구려 왕족을 모신 사이타마현(埼玉)의 고려(고마)신사를 찾았다. 과거사 반성에 인색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는 대비된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 신사가 일제강점기에 ‘내선일체의 성지(聖地)’로 떠받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고려신사 기사 앞에는 늘 ‘내선일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곳은 고구려 멸망 후 일본 조정이 마련해주었다는 고구려 유민촌을 다스린 고려약광(高麗若光)을 모신 신사(사진)다. 19세기 말까지는 평범한 신사였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 이후 갑자기 유명한 답사코스로 각광받는다. 무단통치에서 문화정치로 탈을 바꿔 쓴 일제가 이 신사를 식민통치의 정..
조선의 하늘을 비춘 ‘손님별’ ‘케플러 초신성’이라는 천문현상이 있었다. 1604년 10월17일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발견한 초신성 폭발현상(사진)을 일컫는다. 이보다 4일 전인 10월13일 조선의 에도 초신성 기록이 등장한다. “1경(오후 7~9시)에 황적색의 객성(客星)이 미수(전갈자리) 10도의 위치에 출현했다”는 것이다. 객성, 즉 초신성은 6개월간 연속으로 관측됐다. 케플러는 신기한 우주쇼로 여겼겠지만 선조 임금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선조는 객성을 적성(賊星), 즉 도적별로 규정하면서 “하늘의 꾸지람이니 몸과 마음을 삼가야 한다”고 반성했다. 조선의 임금은 초신성의 출현을 ‘하늘이 임금에게 내리는 경고메시지’로 해석했다. 1572년 11월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가 카시오페이아 자리에서 별의 대폭발(..
대한민국이냐, 고려공화국이냐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 1948년 6월7일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회 위원 30명은 무기명 투표 끝에 압도적인 표차로 ‘대한민국’을 국호로 의결했다. 그러나 ‘대한’이 국호로 쓰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1897년 고종(사진)이 황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大韓)’이라 했다. “조선은 원래 중국의 책봉을 받은 기자조선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명나라 황제가 낙점해준 국호”라는 것이다. 고종은 “삼한(三韓)의 땅을 하나로 통합한 이상 국호를 ‘대한’이라고 정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고종의 ‘대한’은 한일병합으로 13년 만에 단명했다. 9년 뒤인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국내외 독립투사들이 모여 임시정부를 만든다. 국호가 화두로 떠올랐다. 우선 신해..
청와대 미남불상과 데라우치 꽃 사내초(寺內草), 화방초(花房草)…. 1922년판 에 실린 조선 고유 식물 2종의 이름이다. ‘금강초롱’이라는 예쁜 이름 대신 왜 화방초라 했을까. 초대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에서 따왔다. 꽃의 학명도 ‘하나부사야(Hanabusaya)’로 시작된다. ‘사내초’는 식민지 조선의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穀·1852~1919)의 이름을 딴 꽃이다. 이 꽃의 이름은 ‘조선화관’ 혹은 ‘평양지모’라 바뀌었는데 학명은 여전히 ‘데라우치아(Terauchia)’로 시작된다. 이름을 붙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1882~1952)의 변(1913년)이 기가 막힌다. “데라우치 총독 각하 덕분에 (식물조사를 벌였으니) 감복하고 있으며, 본 식물을 각하에 바쳐 길이 각하의 공을 전하려 합..
겸재 정선의 ‘졸작열전’ ‘겸재는…조선중화사상에 따라…조선고유색을 현양한 진경문화를 주도한…진경산수화법의 창시자다.’ 겸재 정선(1676~1759)을 향한 극찬이다. 심지어 ‘민족적 자존심을 지킨 화성(畵聖)으로 추앙해야 할 인물’로도 꼽힌다. 무오류의 위인전을 읽는 듯하다. 그러나 지나친 신봉은 외려 겸재의 진정한 가치를 흐리게 하지는 않을까. 장진성 서울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의 논문(‘정선의 그림 수요 대응 및 작화방식’)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겸재는 그야말로 쓸어내리듯 휘두른 빠른 붓질로 단번에 그리는 ‘일필휘쇄(一筆揮灑)’ 필법으로 유명하다. 겸재의 절친인 이병연은 “내 친구 정선은 그림 그리는 흥취가 날 때 붓이 없으면 내 손에서 붓을 빼앗아…쓸어내리듯 휘두른 붓질이 더욱 방자해졌다”고 평했다. 문인 이규상..
일본 장관의 경천사 탑 약탈 1907년 2월 개성 인근의 경천사터에서 천인공노할 사건이 터졌다. 대한제국을 방문한 일본의 궁내부 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아키(田中光顯)가 경천사 10층 석탑(사진)을 무단으로 해체해서 반출해 간 것이다. 일본 정부가 파견한 외교사절이 저지른 만행에 국내외 여론이 아연실색했다. 다나카는 “고종 황제의 허락을 얻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일본의 이륙신문마저 다나카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 황제가 기증했다면 제대로 격식을 갖춰 인수인계해야 했다. 그러나 기증문서도, 공식행사도 없었다. 고종이 진짜 일본에 기증했는지 의심스럽다.” 약탈의 전모를 알게 되면 기가 막힌다. 주민들의 만류를 총칼로 위협한 일본인들은 높이 13m에 달하는 대리석탑을 140여 점으로 잘라 달구지로 실어날랐다. 대한매일신보는 ..